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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멘탈 Aug 14. 2023

모든 일의 서막

어른들이 그랬다. 내 집은 내가 알아볼 거라고.

오빠는 항상 말하고는 했다. 옛날 집을 사서 고쳐서 살고 싶다고. 나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코웃음을 쳤다. 편한 아파트를 두고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엄청나게 비싼 고생!


그랬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하우스'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그렇게 된 연유에는 가랑비에 옷이 젖듯 오랜 시간에 거쳐 실행된 오빠의 가늘고 긴 설득이 있었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을 해도 오빠는 끈질기게 그리고 일관되게 나에게 하우스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나의 털북숭이 아이들은 어느새 나이가 들어 Senior dogs(노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선 그즈음부터 오빠가 오빠의 하우스 철학에 아이들을 슬그머니 끼어 넣고 있었다. 아이들도 마당 있는 집에 살아봐야지 않겠냐는 둥, 마당이 있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냐는 둥. 그런데 듣고 듣다 보니 내가 어느 날 설득이 돼있었다.


호주 부동산은 한국 부동산의 특징과 반대다. 한국은 아파트를 선호한다면 호주는 반대다. 그래서 호주는 대부분 아파트보다 하우스(주택)가 비싸다. 오르는 시세도 대부분 아파트보다 하우스가 훨씬 더 많이 오른다. 집값이 오르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이유가 굳이 아니더라도 호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주택을 선호한다. 자녀가 있다면 특히 더욱더.




10년 전 우리가 결혼을 준비할 때 초반에는 집을 살 생각을 안 했다. 그런 생각조차 '못'했다는 말이 더 맞다. 아무 도움 없이 우리끼리 모든 걸 해야 했기에 집을 살 수 없을 줄 알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고 사실 그 큰돈을 지출하는 것에 대한 겁도 났다.


그런데 집을 렌트를 하려고 막 보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전등이 켜지더니 집을 한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렌트비(집세)를 내느니 차라리 대출 때문에 은행집이라 할지라도 ‘내 집’에 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가 이리저리 계산을 두들겨 보더니 집을 사자는 결론을 내렸다.


렌트를 하는 것과 집을 사는 것은 아예 다른 전략과 계획이 필요했기에 집 찾는 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동네마다 시세가 달라서 시세도 파악해야 했고 버짓(예산)도 다시 생각해야 했다. 11월에 결혼식인데 9월쯤부터 매매하는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참 다시 생각해도 그건 ’ 깡‘이었다. 깡 없이는 불가능했다.


호주는 보통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4시 정도까지 오픈 하우스를 여는데 약속 없이 아무나 그 시간 동안에는 집을 들어가서 볼 수 있다. 여행을 가면 30분 단위로 계획을 짜는 우리는 집을 보러 다닐 때도 스파르타식이었다. 주중에 부동산 웹사이트로 마음에 드는 집을 보고 금요일이면 리스트를 정리하고 지역을 나누고 루트를 짜서 토요일을 계획했다. 토요일이면 둘이 찢어져서 따로 하루종일 집을 보러 다녔다.


살인적인 하루 스케줄

그렇게 토요일마다 스무 개 정도의 집을 보러 다녔다. 우리가 정한 버짓(예산)은 오십만 불이었는데 그 예산에 들어오는 집들은 어딘가 2프로 부족했다. 사실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우선 어디서든 시작을 하고 점점 나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어른들이 그랬다. 내 집은 내가 알아볼 거라고. 


매매로 나온 집들을 보러 가기로 한 첫 토요일, 오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지역의 Off-market listing(아직 공식적으로 부동산마켓에 올라가지 않은 매물) 집을 한번 보러 가보자 했다. 나는 그때 뭐가 뭔지 모르는 순진무구한, 혹은 무식한 상태였는데 아직도 그 집에 들어가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햇살이 마룻바닥을 따뜻하게 감싸던.


그 이후로도 보는 모든 집을 나는 그 ‘첫 집’에 비교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 버짓으로는 넘볼 수 없는 집이라고 생각하고 체념 상태 였다. $550k (오십오만 불)에 올라오긴 했지만 그건 사실 부동산 업자의 낚시였다. 그 가격으로 팔릴 일이 없는 지역이었다. 그 당시 집 값이 엄청 오르고 있을 때였고 (항상 그런 때인 거 같지만) 그래서 우리는 언감생심 시도할 생각도 안 하고 다른 지역으로 열심히 집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계속 그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을 수십 개 봤는데 너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첫 번째로 봤던 아파트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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