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이끌려 그렇게 가족이 되었다.
2008년.
나는 서럽고 불쌍하고 가난한 유학생이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는 게 얇은 얼음 위를 걷는 듯 조심스러워서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숨이 막혔다.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 같았고 나는 더럽게 운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강아지 광고를 보게 됐고 깊은 생각 없이 계획 없이 무모한 일을 저질렀다.
나는 J 타입의 사람인데, 정확히 말하면 계획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 중요한 일을 그냥 저질렀다.
운명이라, 인연이라 그랬나 보다.
태양이가 나에게 오고 처음 3개월은 나랑 24시간 붙어 있었다. 학교든 교회든 그냥 다 데리고 다녔다. 1킬로도 안 되는 솜덩이를 차마 집에 혼자 놓고 다닐 수가 없어서 가방에 넣어 어딜 가도 다 데리고 다녔다.
대체 무슨 정신머리였는지 난 당시 간호 졸업반이었는데 제일 중요한 시기 마지막 몇 달을 렉쳐고 튜터고 태양이를 가방에 넣어 학교에 데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을 하면 약간 아찔해지지만 천사 같은 내 아기 강아지는 오줌 한 번 안 싸고 앙 짖는 거 한 번 안 하고 얌전하게 가방 안에서 잘 기다리고 잘 잤다.
이 시기에 내가 무지하고 멍청해서 태양이에게 정말 잘 못한 게 하나 있다.
인턴 인터뷰를 보러 가는데 애를 집에 혼자 내버려 두고 갔으면 될 것을 그때는 그렇게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태양이를 태워 데리고 가서 차 창문을 열어놓고 물을 놓고 차 안에 애를 넣어놓고 인터뷰를 보러 갔다.
그렇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아찔해지는 멍청함이었다. 다행히도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태양이는 차 안에서 한 시간 남짓 잘 기다렸지만 뭔 일 났으면 어쩔 뻔했는가. 이 미친 주인놈아. 내가 그랬지만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이 좌충우돌 무모했던 3개월 동안 태양이는 다행히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며 튼튼하게 생존했고 사회화가 아주 제대로 됐다. 너무 사회화가 된 나머지 그냥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자기주장 강한 어린이 강아지가 됐다.
부작용은 분리불안증이었다. 나도 얘도 분리불안증이 생겨 대체 어떻게 떨어져야 할지 모르겠었다.
그때쯤 다른 강아지의 광고를 보게 됐다. 태양이와 아주 비슷한 광고였다. 태양이는 쑥쑥 자라고 있었고 계속해서 애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없는 집에 혼자 있을 태양이한테 동생이 있으면 좋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 두 번째 무모한 일을 저질렀다.
어쩌다 보니 첫째 강아지를 데려오고 첫째가 혼자 있는 게 마음이 쓰여서 단지 그 이유 하나로 삼 개월 만에 둘째 강아지를 데려오고 이십 대의 내가 일을 점점 키워갔다.
그때 내 처지에 강아지를 데리고 온다는 것, 그것도 다견가정을 만든다는 것. 무지하고 어렸기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겁 없는 애송이였기에 가능한 무한도전 같은 일이었다.
내 인생은 얘네가 있어서 채워졌으니 물론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은 결정을 하겠지만 현실은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안 됐었던 준비 안 된 보호자였다.
뭐든 잘근잘근 씹던 태양이가 둘째 강아지도 물어뜯을 까봐 살짝 불안했는데 기우였다. 4개월밖에 안 됐던 아기 태양이는 자기 간식도 나눠주는 든든한 형아가 되어 5주 된 꼬물이를 품었다.
보통 아기 강아지를 데려오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 기간이 필요해서 편히 못 자고 자기 엄마를 찾던지 형제를 찾던지
밤새 끙끙 거리기도 하고 심한 아이들은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기도 하는데 그 적응 기간이라는 것도 둘 다 전혀 없었다.
엄마 심장소리 같이 들리게 시계를 수건에 감싸서 자는 집에 넣어준다던지 원래 자던 이불을 가지고 와서 익숙한 냄새를 맡게 해 준다던지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태양이는 오는 날 차 안에서부터 내 목 위에서 자더니 집에 와서도 배 까고 세상 편하게 잤고 둘째 역시 오는 날 차 안에서부터 잘만 잤다.
착하고 똘똘한 강아지 두 마리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부족하고 외롭던 나에게 왔고 내 가족이 되어 주었다.
나는 정말 복 받은 보호자이다.
2008년 12월 17일.
우리 셋 가족 된 날.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