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던지 놓치던지
꽉 쥔 손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현실은 서글펐다. 우리가 집을 찾아 헤매는 시간동안 집값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고 미친듯이 올라갔다. 우리가 한끗씩 모자라서 못 샀던 그 집들은 레노를 한 후 웃돈을 얹져 1.5배 이상에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배가 아팠다. 집값이 오른 것도 문제지만 피폐해져 가는 내 멘탈도 문제였다.
애석하게도 발바닥에 불나게 매주 토요일 열채씩 집을 보러다니며 발품을 팔아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였다. 어쩔수 없었다.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에 뭐라도 시도도차 해보려면 뭔가를 포기를 하는 수 밖에. 오빠와 나는 마지막까지 포기 할 수 없었던 한개씩을 포기하기로 했다. 꽉 쥔 손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었다.
오빠는 가라지(주차공간)을 포기했고 나는 화장실 두개를 포기했다. 이게 맞는건가 싶었지만 우선 보는 눈을 한번 낮춰 보자 했다.
도메인 웹사이트에 언제나 [3+ bedrooms, 2+ bathrooms, 1+ parking | 방 세개 이상, 화장실 두개 이상, 주차 한 개 이상] 서치 하던 것을 [3+ bedrooms, 1+ bathrooms, Any parking | 방 세개 이상, 화장실 한개 이상, 주차 아무거나] 로 바꿔서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못보던 매물들이, 심지어 괜찮은 매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고집피우고 집착해서 놓쳐버린 기회가 얼마나 있었을지 생각하니까 아득해 졌다.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지 오래고 우리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됨 정신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영화같은 팬더믹 시절 우리는 지금이 아니면 안될 거 같은 초조함과 불안감을 가득 안고 하우징 폭풍속에 살고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호주 전역에, 그리고 시드니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2021년 시드니 집 값은 여전히 치솟고 있었다. 다들 막차에라도 타야할 거 같은 마음에 내달리고 있었다. 그 날도 난 여전히 새로운 매물이 올라 온 게 있는지 도메인 웹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 때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집 이었다.
이 집은 그동안 우리가 기피하던 동네에 있었지만 이 뷰를 보고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보통 오빠는 나보다 새로운 매물은 더 잘 꾀고 있었는데 무슨 일에선지 이 집은 오빠의 레이더 망에 걸려 들지 않았다. 오빠는 동네 때문에 별로 탐탁치 않아 했지만, 그리고 그 주 토요일, 우리의 집 보는 스케쥴은 아침부터 빼곡히 채워져 있었음에도, 때마침 이 집의 오프닝 시간이 아침에도 한번, 늦은 오후에도 한번 이었기에 오빠에게 그냥 한번 가서 보기나 하자 했다.
2021년의 5월 화창한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