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뒤처진다는 불안: 커리어의 시계가 멈추는 것에 대하여]
취업 후, 그토록 원하던 연구개발직에 몸담으면서도 두려움은 형태를 바꾸어 나를 따라다녔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트렌드,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는 시장 속에서 나는 늘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렸다. 내가 가진 기술이 구시대의 유물이 될까 봐, 내가 아는 지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까 봐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벼랑끝으로 몰아쳤다.
이 두려움은 육아휴직을 결정해야 했을 때 극에 달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세상은 나를 잊으면 어쩌지?", "다시 돌아갔을 때 내가 설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선택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멈춰버린 내 커리어의 시계만을 응시했다.
남들은 저만치 앞서 달려가 '성공'이라는 깃발을 꽂고 있는데, '경력 단절'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경제적 단절이 아니라, 사회적 자아의 죽음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 봐, 다시는 '전문가'의 세계로 복귀하지 못할까 봐 떨고 있었다.
[거울 속의 엄격한 판사: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
가장 깊고 어두운 두려움은 사실 외부에 있지 않았다. '나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를 마주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나는 타인에게는 부드러운 척했지만, 내 내면에는 날카로운 칼을 든 판사가 한 명 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세운 '완벽한 나'라는 환상에 도달하지 못하는 현재의 초라한 나를 마주하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이 두려움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투사되었다.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동료나 가족들에게 내가 나를 대하듯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었던 것은, 사실 내 안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공격성이었다.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타인을 먼저 지적하고 통제하려 했다. 결국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불완전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두려움의 파도를 넘어서며: 비눗방울의 지혜]
이제 나는 그 두려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웠던 나.
실패자로 기억될까 봐 전전긍긍했던 나.
뒤처질까 봐 불안해하던 나.
자서전을 쓰며 깨달은 것은,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 '어둠'들이 사실은 내가 삶을 얼마나 열망했는지를 보여주는 '빛'의 그림자였다는 사실이다. 실패가 두려웠던 것은 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고, 뒤처지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더 나은 미래를 꿈꿨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비눗방울을 보며 두려움을 달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비눗방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공중에 떠 있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당당하게 빛을 발한다. 터지는 것이 두려워 불지 않는 것이 아니라, 터질 것을 알기에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불어내야 한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공백'과 '실패'는 사실 새로운 나를 채워 넣기 위한 '공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나는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 그 두려움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내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