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8화. 나를 지탱한 한 사람 혹은 한 문장

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by 기록하는 엘리

2부. 현재 ― 살아내는 시간 (Day 11~20)

16~20일 : 내 안의 두려움과 성장

Day 18. 나를 지탱한 한 사람 혹은 한 문장


불안이라는 파도를 넘고 있는 나에게: 존재 자체로 충분한 이유





[끊임없는 의심의 굴레, 그 안에서 치열했던 너에게]


나는 끊임없이 내가 하는 선택이나 결정이 최선의 선택일 지에 대해 자문하는 버릇이 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나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독한 감기처럼 불쑥 찾아와 나를 괴롭히곤 했다. 박사 과정을 포기했을 때도, 직무를 바꾸며 방황했을 때도, 나는 내 선택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검열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 의심조차 내가 삶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잘하고 싶었기에 불안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흔들렸던 것이다. 매일 아침 눈을 떠 오늘 하루의 무게를 견디어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때의 나는 몰랐을 것이다.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지만, 나는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두려움 속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과 살아가야 할 시간에 대해 믿으며 언제나 늘 그랬듯이, 또 다시 나아가고자 한다.


잘했고: 내가 실패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순간들—끝내 따지 못한 박사학위(석사 졸업), 포기했던 직무, 눈물로 지새웠던 밤들. 사실 실패가 아니라 '경험의 축적'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고, 그 과정에서 온 마음을 다했다. 그러니 나의 과거를 '부족함'으로 기억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그때 가장 뜨겁게 살았고, 그만큼 잘해왔다.

잘하고 있고: 현재의 나는 지금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와 비눗방울을 불고, 서툰 글을 쓰며 나를 찾아가는 이 시간 역시 나는 아주 잘해내고 있다. 커리어가 멈췄다고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지금 '엄마'라는 역할 속에서도 '기록자'로서도 내 마음의 숲을 가꾸고 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성취는 없을지 몰라도, 내면의 근육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지고 있다.

잘 될 것이다: 미래의 나를 미리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주도성을 되찾고 성장을 멈추지 않는 나라면, 어떤 갈림길에서도 나만의 길을 찾아낼 것이다. 미래는 네가 오늘 뿌린 기록의 씨앗들이 싹을 틔워 만들어갈 울창한 숲이니까.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나'라는 무늬의 일부]


과거의 나는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다. 해결책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네 모습을 부끄러워했고, 완벽하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을 바엔 숨어버리고 싶어 했다. 실수를 하고, 길을 헤매고, 끝내 답을 찾지 못해 쩔쩔매던 그 모습조차 오롯이 '나'라는 사람의 사람다운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매끄럽기만 한 도자기보다 투박한 손자국이 남은 흙 그릇이 더 정겨운 것처럼, 내 삶의 굴곡과 흠집들은 너를 더 인간적이고도 입체적인 존재로 만들어주었던 셈이다.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앓았던 그 고민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더 깊이있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소중하고 귀중한 순간들을 '잘못'이라고 치부하며 미워하지 않고, 그 찰나의 흔들림조차 내 생의 찬란한 풍경이었음을 인정하며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먼 미래보다 현재,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기적]


사람들은 종종 '내일'이라는 그림자에 가려 '오늘'의 햇살을 놓치고는 한다. 10년 뒤의 커리어, 20년 뒤의 노후를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내 곁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눈망울을, 창가에 비추는 계절을 외면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그뿐이다.


먼 미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아이와 나눈 따뜻한 인사, 내가 좋아하는 차 한 잔의 여유, 내 마음을 정성껏 옮겨 적는 이 문장들은 내가 온전히 다스릴 수 있는 행복이다. 주어진 삶에 집중하고, 현재의 나에게 다정해지는 연습을 시작했을 때 비로소 삶은 축제가 된다. 더 나은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느냐에 달려 있다.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희생하지 말아야겠다. 오늘 내가 행복해야, 내일의 나도 웃을 수 있으므로.




[맺음말: 나는 나로서 이미 충분하다]


이제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대견하게 바라보고 싶다. 나는 늘 더 진실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으로 발버둥쳤고, 힘듦의 무게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왔다. 어쩌면 더 나은 삶이 분명 있겠지만, 나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굽이진 길을 사랑하며 나아가기로 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깨달음들이 모여 '나'라는 고유한 존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귀하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마음껏 즐기고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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