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9화. 실패에서 배운 교훈

세 가지 시간에 피어난 무지개를 담다

by 기록하는 엘리

2부. 현재 ― 살아내는 시간 (Day 11~20)

16~20일 : 내 안의 두려움과 성장

Day 19. 실패에서 배운 교훈





[실패하지 않으려던 나]


실패를 해야 성장을 하는 것인데, 거울 속에는 종종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는 내 모습이 보였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는 했지만 쉽고, 빠르고, 보장된 길로 가고싶어 내 선택이 맞는지 돌다리를 여러번 두드려보고는 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은 '최적화(Optimization)'와 '효율(Efficiency)'을 향해 있었다.


길고도 짧은 인생속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목표를 이루는 삶도, 다채로운 삶을 선택하는 것도 인생에 정답은 없으므로 무엇을 선택하든 나의 가치관에 따라 걸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노력한다고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노력했다면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결과를 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인생 역시 그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흘러가고 싶어 애를 썼다. 하지만 여러가지 실패를 겪으며 몸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실패를 통해 내가 낭비했다고 생각한 그 시간들은, 사실 내 내면의 지형을 넓히는 '우회로'였다. 달리는 야생마처럼 직선으로만 달렸다면 보지 못했을 풍경들이었다.


과거의 나는 나 자신을 사회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무슨 직무의 일을 하는 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사회적 이름표들이 사라질 때 내가 무너졌던 이유는, 사회적으로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정의내리며, 나 자신의 자존감을 깎아내려가며 괜히 더 위축되고는 했다.




[오만했던 나, 그리고 깨달은 교훈]


실패를 모르던 시절의 나는 오만했다. 휴학없이 방황하지 않으며 내가 가고자하는 길을 향해 앞서서 달려나가면서 또래보다 어린 나이에 이룬 성취들이 자랑스러워 자만했다.


또한, 타인의 실패를 보며 속으로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쉽게 단정 지었다. 완벽주의라는 잣대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휘둘러졌다. 하지만 내가 직접 밑바닥을 치고, 내 의지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불가항력을 마주하며 그 칼날은 비로소 꺾였다.


실패는 나에게 '판단하는 마음' 대신 '헤아리는 마음'을 주었다.


누군가 길을 헤매고 있다면, 이제 나는 그를 한심하게 보는 대신 "얼마나 막막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누군가 중도에 포기했다면,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를 가늠해 본다.


실패가 내 영혼 균열을 내었고, 그 사이로 비로소 타인의 고통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공감의 능력은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실패는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그 겸손함은 세상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부서진 것'들의 아름다움: 킨츠기(Kintsugi)]


일본에는 깨진 도자기를 금칠로 이어 붙여 예전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는 '킨츠기'라는 상처가 예술이 되는 공예 기법이 있다. 실패를 겪은 후의 내 인생은 마치 이 킨츠기 도자기와 같다.


예전에는 흠집 하나 없는 매끄러운 인생만이 아름답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부서지고, 다시 기록과 성찰이라는 금실로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인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오묘한 빛을 내뿜는다. 실패의 상흔은 더 이상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치열하게 살아남았다는 훈장이며, 내 인생이라는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고유한 무늬다.


실패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며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은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경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부서지고 다시 이어 붙이며 나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제 나는 내 인생의 여백과 흠집들을 오롯이 보며 나아갈 수 있다. 그 틈새로 빛이 들어오고, 그 틈새로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믿기 때문이다.




[맺음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처럼 그동안 나는 실패를 분석해야 할 '데이터'로만 보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복기하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썼다. 실수노트를 쓰기도 했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고 덮어두고 자책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실패를 마치 내 영혼의 숲을 키우는 '양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낙엽이 져서 땅에 묻혀야 다음 해에 더 푸른 싹이 돋아나듯, 나의 수많은 포기와 실패들은 내 내면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실패해 본 적 없는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향기가 있다. 그것은 상실을 겪어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담담한 평온함이며, 무너져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유연한 강인함이다. 나는 이제 그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듯, 인생의 어떤 방울이 다시 터진다 해도 나는 기꺼이 다음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실패는 나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나에게로 데려다주었다는 생각으로 실패도 인정하고 껴안을 용기를 가질 것이다.


실패하고 실수를 한 모습도 나 자신의 모습이므로. 실패하고, 반성하고, 실수하고, 그렇게 또 다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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