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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Mar 02. 2023

안녕, 이방인 라이프

유학생 아내와 수험생의 삶에 고하는 작별


  좀처럼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좋은 소식이 찾아왔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지 않게 되어 무척이나 다행이었다. 사실 결국 안될 줄 알았기에, 마음이 저 깊은 아래로 침잠하하던 무렵이었다. 저 밑바닥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고 싶은 공부를 체계적인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정말 기쁘고, 아직도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꿈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합격메일. 받아보고 와악! 소릴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세상에서 배우는 가장 좋아하는 학문은 어떤 모양새일지 궁금하고 기대가 많이 된다. 재학생들에게 듣기로는 연구 참여 기회가 많아서, 동시에 3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상상이 안 된다. 또, 상담 슈퍼비전을 받을 때, 이 곳 상담심리 대학원생들은 축어록을 풀지 않고 동영상을 슈퍼바이저와 같이 보면서 슈비를 받는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녹음파일만 열심히 들었던지라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하다. 상담실도 시설이 상당하다. 언어적인 장벽을 넘는 것이 관건일 것 같아서, 시간 많을 때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그간 체계 밖, 네트워크 밖의 '이방인'으로서 살았던 시간이 끝난다는 것 또한 크나큰 기쁨이다.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학생의 타운에서 학생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것의 설움이 컸다. 학생 네트워크 밖의 삶은 외로움 그 자체였다.



  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경제 활동이 금지되어 돈 한 푼도 못 버는데 학생 할인은 하나도 못 받으며, 어딜 가나 학교 티셔츠를 입은 학생들 천지에, 학생인 남편 없이는 대학 도서관에서 혼자 책도 못 빌렸고, 등록해 보고 싶던 테니스 클럽에도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신청하지 못했다. 가게나 마트에서 스몰토크라도 할라치면 당연하게 이 학교 학생이라 전제하고 질문을 해서 심통이 났다. 누가 봐도 즈그들만의 도시였다.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소수자, 이방인으로서의 삶이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소외감이었으니 말이다. 교환학생 때만 해도 어쨌든 그 학교의 '소속'으로 갔기에, 늘 친구들이나 다른 교환학생들이 주변에 있어 이런 기분은 못 느껴봤던 것 같다. 무소속이 주는 소외감, 고립감을 온몸으로 느껴본 시간이었다. 이 또한 독특한 삶의 경험이자 이력 한 줄이 될 것 같다.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견디며 다른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수험생으로서의 삶에 충실한 끝에, 드디어 학생 네트워크 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고립과 외로움이 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면 또 힘들다고 우는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이 마음을 잃지 않고 소중하게 이어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길고 길었던 과정에서 받았던 도움과 응원, 격려의 마음들이 정말 많았는데, 살면서 또한 돌려주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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