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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Mar 18. 2023

미국 시골 유학생들의 봄방학나기


  봄방학이다. 친구들과 함께 봄방학을 보내기 위한 발칙한 계획을 세웠다. 인디애나에 있는 한 시골마을, 그러니까 지금 사는 대학타운보다도 한-참 더 시골인 호숫가의 에어비앤비 캐빈을 통째로 빌려 자체 엠티를 가기로 한 것이다. 놀러 가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여행 당일, 캐빈으로 가는 길에 잠시 인디애나폴리스에 들러 가볍게 관광을 하고 밥을 먹었다. 너무 오래간만에 대도시(?)의 빌딩들을 보니 가슴이 뛰었다. 도시를 천천히 거닐어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춥고 눈보라가 쳐서 호다닥 사진만 찍고 차로 도망치듯 뛰어들어야 했다. 날씨가 참 안 도와준다. 봄방학에 눈보라라니 말이다.

빌딩을 보고 설레는 게, 시골 촌사람 다 되었읍니다 - 이상 서울에서만 29년 산 사람-
전쟁 박물관의 위엄. 사실 이날 열지 않았다.
성당 앞에서 한 컷. 성조기는 사대주의짤의 필수 요소
휴관인 전쟁 박물관 앞에서 관광객 샷 하나



   추운 날씨에 서둘러 코스트코로 발걸음을 옮겼다. 또래들과 같이 장보고 놀러 가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대학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게다가 미국 와서 진짜 코스트코를 처음 경험해 봤다. 모든 물건이 다 특대 사이즈로 층층이 쌓여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팩의 양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 상당히 큰 삼겹살 덩어리와 먹거리들을 사고 든든한 마음으로 에어비앤비 캐빈으로 출발했다.





  캐빈으로 들어가는 길이 참 아름다웠다. 미국인들에게도 '옥수수밭', '깡시골'이라는 인식이 있는 인디애나주답게,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살면서 언제 또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옥수수밭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사진도 몇 장 남겼다. 미국 국도는 시골의 정취 한복판을 달릴 수 있어 나름의 감성이 있다. 겨울에는 나무들이 헐벗고 휴지기라 다소 삭막한 느낌이 있는데, 여름에 오면 엄청 푸르고 찬란할 것 같다.




옥수수밭을 가로질러 한참을 더 들어가니 작은 호수와 한적한 캐빈이 나타났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호수였다. 봄방학이라 포근함을 기대했지만, 꽃샘추위 때문에 많이도 떨었다. 아쉬운 대로 쓸쓸한 듯한 겨울 호수의 느낌을 눈과 사진에 꼭꼭 담아왔다. 얼마나 고요하고 한적한지-.



  캐빈이 생각보다 마음에 쏙 들었다. 호숫가를 바라볼 수 있게 통유리로 설치되어 있었다. 따뜻한 물이 퐁퐁 솟는 야외 사우나도 있었다. 미국인들, 풍류는 기가 막히게 향유하는구나 싶다. 날씨가 따뜻했으면 한 시간이고 호수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을 텐데, 테라스도 꽤나 추워서 조금 보다가 얼른 실내로 도망치고, 또 나와서 잠시 보다가 후퇴하고를 반복했다. 그래도 비수기 겨울에 와서 저렴하게 머물 수 있었다.



  숙소에 와서 짐을 풀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아래층이 뭔가 분주한 듯하더니, 예상도 못 하게 깜짝파티가 펼쳐졌다. 대학원 합격 축하파티였다. 생각도 못 해서 얼떨떨하고, 이토록 과분한 축하를 받아도 되나 싶어 감동이었다. 늘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은 것 같아서 감사하고도 마음이 무겁다. 살면서 차근차근 되갚아나가야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아



  그리고 대망의 삼겹살 바베큐 파티. 남자팀이 눈을 맞으며 고기를 굽느라 너무 고생했다. 야외 그릴에서 구워서 그런지 미국에 와서 먹은 수많은 삼겹살 중에 가장 맛있었다. 마트에서 명이나물과 김치도 잔뜩 사 갔는데, 쌈장에 찍어 먹는 순간 눈이 띠용- 튀어나올 뻔했다. 도톰한 삼겹살이 겉은 바삭하게 익고 속에는 육즙을 가득 머금어서, 씹는 순간 바삭함 속에서 육즙이 터져 나오는 듯한 식감이었다. 역시 놀러 나와서 야외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이 최고다.

포브스 선정 다시 먹고 싶은 삼겹살 1위
삼겹살을 위한 완벽한 셋팅



   배가 터지도록 삼겹살을 먹었다. 코스트코 삼겹살의 양이 넉넉하기는 또 얼마나 넉넉한지, 여섯 명이 달려들어 먹었는데도 한참 남겼다. 고기로 배를 다 채워서 후식 라면도 못 먹을 정도였다. 등따숩고 배부르니 행복했다. 배 터지게 먹고 상을 치우고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으로 광란의 밤을 보냈다. 개인적으로 속고 속이는 심리전과 사기가 판을 치는 게임을 좋아하는데 새로 배운 'Bull Shit'이라는 카드게임이 재밌었다. 여럿이 즐기기에 재밌는 게임이었다.


손으로 하는 축구게임도 재밌었다. 이날, 신들린 엄청난 기술이 등장했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밤새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이게 정말 봄방학이 맞는 것인지 속으로 재차 되물어보았으나, 그냥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눈 내린 호숫가도 운치 있고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눈 내린 호수를 바라보며 아점으로 라면을 거하게 끓여먹으니 기분이 그만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느꼈지만 큰 냄비에 함께 끓여먹는 라면은 희한하게 끝도 없이 들어간다.


   늦은 나이에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학생 시절의 소소한 감성과 재미를 누려볼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느라 한동안 잊고 있던 감성이었다. 다시 학생이 되긴 되었나 보다.


   때때로, 숨 가쁘게 집 사고 차 사는 세상과 동떨어져 스무 살을 다시 살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이가 차고도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드는 한편, '내려놓으면 편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비록 무일푼의 가난한 유학생 부부지만, 게다가가 둘 다 공부한다고 마흔이 넘길 때까지 모은 돈 하나/살 집 하나 없겠지만, 뒤처지면서 사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 있는 것 같다.



당분간은 방학이 있는 삶에 그저 감사하기로 하며, 명랑하고 즐거웠던 봄방학 여행기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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