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Mar 20. 2023

블루밍턴의 3월, 반팔과 롱패딩의 대환장 변덕쇼

-5도에서 22도 사이


날씨가 엄청 들쭉날쭉한 3월이다. 한국 앱 네이버 바이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데, 한국은 봄기운이 완연한지 플레이리스트들이 봄 노래로 가득하다. 블루밍턴은 3월 초에 반짝 따뜻해서 22도까지 올라가다가 둘째 주부터 다시 한겨울이 되었고, 이번 주는 내내 -2도 안팎으로 상당히 추웠다. 얼른 따뜻해져서 야외활동도 즐기고 설레는 봄 느낌을 만끽하고 싶다.


계절이 바뀔 무렵 날씨가 들쭉날쭉 변화의 폭이 큰 게 블루밍턴 날씨의 특징 중 하나라는 말을 들어, 그 변덕스러움 자체를 한 번 담아보기로 하였다. 3월 한 달 안에 두 계절이 담겨있는 모습들을 풀어보기로 한다.



2월 말부터 3월초까지 반짝 따뜻한 날들이 연일 이어졌다. 볕 아래 있으니 너무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 아이패드 하나 들고 밖에 나가 광합성을 했다. 볕도 쨍하니 잘 들고, 뷰도 좋아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팟이다. 생기발랄한 학생들 지나가는 것도 구경하고, 볕도 쬐면서 하늘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국에서 SPF 70짜리 선크림을 발견해서, 안전을 위해 피부에 골고루 도톰하게 바르고 볕에 나가 잠시 앉아있었다. 겨우내 흐리고 우중충한 날씨가 오래 이어졌기에, 오랜만에 만난 볕이 유난히 반가웠는데, 미국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저마다 밖으로 뛰쳐나와 따뜻해진 봄 날씨를 즐기고 있었다.



저마다 풀밭 아무 데나 풀썩 주저앉아 삼삼오오 피크닉을 하기도 하고, 나무에 해먹을 걸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도대체 저 해먹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날씨 예보를 보고 책가방에 넣어 가져왔을까? 아니면 상시로 들고 다니면서 원하는 때에 걸고 노는 것일까?- 궁금다.



발리볼을 하기도 하고, 웃통을 훌렁 벗고 소소한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유롭게 원하는 곳에서 날씨를 만끽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고 흐뭇했다. 어쩜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다채로운지, 다들 어리고 생기 넘치고 귀엽다, 대학생들. 너네 진짜 귀여워! 해주고 싶지만, 부끄럼 많은 한국인이므로 속으로만 어여뻐하고 조심히 지나친다.

가볍고 포근한 가디건을 2월에 입은 날



한참 아이들을 구경하며 산책을 하다가 다리도 아프고 당도 떨어져서, 달콤한 초코쿠키와 라떼를 한 잔 사들고 볕이 좋은 자리에 나와 앉았다. 키라기엔 조금 많이 커서 한국 친구들이 다들 호떡이냐며 놀렸다. 오해를 잔뜩 받은 진득한 초코퍼지 쿠키와 함께 캠퍼스의 테라스를 한자리 차지하고 포근 한 시간을 보냈다. 달달한 쿠키와 따뜻한 햇살에 엔돌핀이 팡팡 돌았다. 겨울 패딩 대신 가볍게 걸친 카디건의 촉감도 좋았다. 2월에 이렇게 입고 돌아다닐 수 있다니, 블루밍턴이라 가능한 일인 것 같다.


이름 모를 꽃도 엄청 예쁘게 피었다.


2월 말 반짝 봄 날씨가 가고 다시 추위가 찾아왔다. 옷을 보니 맨살 없이 발목까지 꼭 올려신은 양말에 플리스 두 겹 혹은 패딩을 입은 것을 보니니 대번에 알 수 있다. 전 주까지 가벼운 가디건을 입다가 다시 패딩이라니,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끼며 주섬주섬 겨울옷과 부츠까지 껴입었다. 본디 줬다 뺐는 것이 제일 치사하다고 했다. 다시 추위를 견디는 3월 첫 주였다.



또 며칠 추위를 존버하니 따스한 날들이 찾아왔다. 가만 보니 블루밍턴은 밀당의 고수인 것 같기도 하다. 여름 청바지에 맨투맨 한 장만 입고도 더울 만큼 따뜻했던 날이었다. 야외에 볕 좋은 곳에 앉아 테이크 아웃해 온 버블티 한 잔 마시니 이곳이 천국이었다. 기분이 엄청 좋다. 곳곳에 꽃망울이 움트고 있는 것도 포착했다. 곧 있음 꽃도 만개하겠구나 지레 짐작했다.


필자가 긴팔에 긴 바지 정도 입는다는 것은 필히 미국 아이들은 반팔을 입는다는 뜻이다. 다들 어찌나 옷을 얇게 입는지 볼 때마다 놀란다. 저 강인함의 비결이 뭘까 정말 궁금하다. 한 번은 겨울에 얇게 입는 미국 아이들을 보고 '나라고 왜 못해? 한 번 해보지 뭐' 하며 한겨울 레깅스에 바람막이만 입고 나가 조깅을 했다가, DG게 앓았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뱁새는 황새를 절대 따라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여기는 날씨 좋은 날 핫플레이스가 되는 곳이다. 야외 테이블과 좌석도 많고, 사진으로 보다시피 경치도 아기자기하니 예뻐서 조금만 따뜻해져도 북적이는 곳이다. 이날도 유난히 날이 좋았던 하루였다. 기온은 조금 쌀쌀해서 장작불 바로 옆자리에 앉아 몸을 녹이면서 볕을 쬐면 딱 좋았다. 역시나 미국 아이들은 14도 안팎의 날씨에 반팔이나 민소매를 입고 있다. 지난날의 교훈을 잊지 않고 꿋꿋하게 혼자 긴 바지에 니트에 청재킷까지 챙겨 입고 불 바로 옆자리에서 따뜻하게 있었다. 다리를 척 올리고 집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리고 또 그다음 주, 하필 봄방학 기간에 엄청나게 날씨가 춥고 눈도 펑펑 내렸다. 방학을 맞아 여행을 예약해두었는데 너무 춥고 눈이 많이 와서 취소하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3월 즈음이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닐 수 있을 줄 알고 도보 위주로 계획한 것이었는데, 너무 추워서 기동력이 떨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3월에 펑펑 내리는 눈에 롱패딩이라니. 2월에 얇은 가디건 하나 입고 다녔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계절이 변덕스럽다. 모쪼록 블루밍턴의 밀당 어린 구애에 봄방학은 멀리 못 가고 전기장판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쉽지만 이것이 지금 사는 곳의 특성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고 관찰해 볼 뿐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집안이 몹시 춥다. 어서 전기장판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봄이 오고 있다면 조금만 서둘러주길, 꽃망울이 피었다가 다 얼어서 지고 있다고 누가 전해주길 바라며 포스팅을 마무리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시골 유학생들의 봄방학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