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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Mar 30. 2023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 스스로의 부족함을 버텨내는 능력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조금 이르지만 박사과정 첫 학기 수업과 수련에 대해서 교수님과 미팅을 하고 왔다. 입학 첫 학기부터 상담 수련에 투입돼 미국인 내담자들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빨리 시작할 줄은 몰랐기에 약간 압도되는 기분과 함께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심리 상담은 언어를 사용하는 토크 테라피라서, 언어가 마음을 나누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콩글리시를 장착한 외국인 학생으로서 과연 심리 상담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안일하게 한 1-2년은 수업과 실습 위주로 연습을 하면서 영어를 늘리고 3학년 정도부터 시작하겠지- 생각했던 것이 과오였다. 역시 인생은 준비나 리허설 없이 투입되는 실전이다.


감사하게도 지도 교수님이 섬세하게 여러 가지 도와줄 방법을 한 보따리 싸서 미팅에 가져오셨다. 공식적으로 입학 전 계절학기부터 실습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처리해 주었고, 영어 감정 단어 리스트 같은 공부 자료들을 챙겨주며 다각도로 도움을 주었다. 이 난관을 어찌 헤쳐나갈지 막막했지만 일단 급한 대로 주는 도움을 넙죽넙죽 다 받아먹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도와주는 사람이라도 있는 게 복이다 싶었다.


아무튼 정말 큰일 났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입학 전까지 영어를 진짜 열심히 해야 한다.


공부하자....






'어떻게 잘 해낼까?'에만 생각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은데 마음이 딴 데로 자꾸 샌다. 위축되고 우울해지는 그림자와 기싸움을 하는 것 같다. 상상의 나래 속에서, 미국인 내담자들이 영어 못한다고 컴플레인을 걸고 난리가 나서 쫓겨나는 레파토리가 그려진다. 너무 무섭다.


그러다가도 조금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영어를 못하지 상담을 못하나? 한국에서는 석사에, 수련에, 자격을 다 갖추고 활동하던 경력자인데 이렇게까지 위축되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학부만 마치고 상담 수련하는 미국인 학생들보다는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회로도 돌려보았다. 암담할수록 희망은 필수다.


지도 교수님이 앞으로 예상치 못하게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에 대해 미리 심리적으로 준비를 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이 박사 과정에서 정말 많이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좌절해도 되고 실망해도 되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어야 된다고 했다. 또, 미리 어느 정도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심리적 준비가 예방주사 같은 것이냐고 했더니 웃으면서 정확하다고 했다.


전공 과정의 수련뿐만 아니라 인생 수련도 같이 시작되는 것 같다. 앞으로 다년간은 매일매일 부족함을 실감하면서 뚝심 있게 걸어가는 것이 가장 어려운 도전이 될 것 같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말 중 가장 와닿았던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여도 계속하는 마음이라는 것이었다-개인적으로 박명수 어록들을 좋아한다-.


예측해보건대 이 박사 과정은 주어진 코스 안에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버텨내는 능력이 졸업에 가장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꺾이고 꺾여도 계속 나아가기를 스스로와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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