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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n 14. 2023

6월, 블루밍턴 갓생러로 거듭나다

고군분투 그 자체지만

 계절학기 마지막 주간이다. 고지가 코앞이다...!


6월의 캠퍼스


덜덜 떨면서 들어가던 수업도 이제는 많이 편안해지고, 질문이나 발표도 한결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심리 상담 실습도 처음 해보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해서 리뷰 보고서도 작성했다. 감개무량이다. 미국인 내담자도 처음인데다가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상담을 하다니 말이다.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잘 마친 게 어딘가 싶다. 이게 되는구나 싶었다.


제출한 축어록과 보고서에 대해서 수업 교수님이 피드백을 주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점수만 매겨서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라인 바이 라인으로 피드백을 세세하게 줬기 때문이다. 배우는 게 많아서 이 모든 힘듦을 감수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녹화한 영상을 여러 번 돌려보는데, 수업에서 배운 것들 써먹으랴 영어 듣고 말하랴 아주 고군분투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내담자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으면서 부족한 영어로 어떻게든 연결되어 보려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울컥했다. 애쓰고 있는 스스로에게 더 잘 해줘야겠다.


축어록, 보고서와 상담 영상 리뷰


그와 동시에 엎어지고 사고 치고 난리가 난 연구 셋업도 열심히 수습하고, 데이터 컬렉션을 무사히 시작했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습득한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술(?)은 '못하는 채로 계속하는' 기술이다. 연구 세팅 과정에서 거나하게 사고를 치고, IRB 승인을 다시 받고 열심히 수습해서 다시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 인간대상 연구는 처음 해봐서 무척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다양한 컴플레인, 칭찬, 감사 인사, 악플을 동시다발적으로 받으며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몇 주 내내 동분서주했다. 혼이 쏙 빠지는 줄 알았다. 눈 뜰 때부터 눈 감을 때까지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연구 참여자들과 의사소통하면서 악플로 미국 슬랭도 많이 배우고, 챗 GPT 덕도 톡톡히 보고 힘들지만 다이내믹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연구 데이터 수집이 이제 거의 90% 정도 수집이 되었다. 수업과 심리 상담 실습도 한 번 남았다. 이번 한 주가 마지막 고비가 될 듯한데, 무탈히 완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막바지다. 얼른 마치고 여행 가서 긴장을 다 내려놓고 팍 퍼져서 놀고 싶다. 조금만 더 힘내자 다 왔다!



중간중간 운동도 많이 했다. 남편과 동료분 운동하는데 껴서 테니스도 치고, 헬스도 하고 수영도 가고 그랬다. 미국 학교는 체육시설 하나는 정말 좋다. 실내 테니스장이 좋아서 한 장 남겨보았다. 계절과 날씨 상관없이 칠 수 있는 곳이 있어 참 좋은 것 같다.


테니스는 참 안느는 것 중 하난데, 속상해서 때려치우려다가 마음을 다잡았다. 쉽게 얻어지는 것이 어디 있으랴. 빨리 잘하려고 해서 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계속 치면 될 일이다. 물론 옆 코트에서 치는 아이들은 다들 꽤나 잘 치고 부럽지만 말이다 - 정말 레나 윌리엄즈 같은 친구들이 있다-. 미국 와서 삶을 배워간다.



요 몇 주 바쁘고 힘들어서 집밥을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정신없을 때는 왜 이리 귀찮은지 모르겠다. 때 되면 급식이나 구내식당처럼 누가 째깍째깍 밥을 해다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양 다 챙긴 밥을 말이다. 연구다, 수업이다 바쁘다고 집안 일과 여행 계획 등등 많은 부분을 남편에게 일임했던 것 같다. 불량주부지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해야 할 것에 몰두할 수 있었다.


간단히 밖에서 밥을 먹으러 나갈 때면 학교 주변을 산책했다. 어슬렁 어슬렁 해지는 것도 보고, 동네 동물 친구들도 보고 그런다. 제일 흔한 친구들은 청솔모, 토끼, 사슴이다. 진짜 귀엽다. 풀을 뜯어 먹는데 세상 무해하다. 사슴은 꽤 여러 번 봤는데도 볼 때마다 아름답고 신기하다.



찬찬히 기록하고 보니 감히 블루밍턴 갓생러라고 할 만하다. 방학이 이렇게 바빠질 줄 몰랐지만 어쨌든 알차게 보내고 있어 기분이 좋다. 조금 지치는 감이 있지만 말이다. 해오던 것을 잘 마무리 짓고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원래 여행 계획에 진심인 편인데 이번에는 바빠서 거나하게 프리라이딩을 했다. 어떤 여행이 될지, 미국 동부 로드트립을 예고하며 조심스레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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