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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Aug 06. 2023

이사, 그리고 블루밍턴 라이프 제 2장

이사와 함께 새로 넘긴 페이지

비자가 조금 늦었지만 다행히도 잘 발급이 되어 이사 직전에 블루밍턴에 복귀했다. 예상보다 한국 체류가 길어지면서, 남편이 혼자 이삿짐을 다 싸게 되어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미니멀로 산다고 살았음에도 꽤나 짐이 많다.



유홀(Uhaul) 트럭을 빌려 짐을 모두 실어 두고, 마지막으로 미국에서의 첫 집과 인사를 나눴다. 처음 들어올 때처럼 텅 비어있는 집을 보니 괜스레 울컥-했다. 때마침 마지막 날도, 처음 왔던 그날처럼 카펫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기에 더더욱 처음 이사 오던 날 생각이 많이 났다.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얼마나 설렜던지. 그 시간이 벌써 일 년이나 지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작고 소중한 첫 집이었다. 방 하나 짜리, 둘이 살기에는 조금 아담한 그런 집이었지만, 첫 신혼집이 원룸이었기에 하나라도 늘어난 방에 마냥 감사했다. 유학생 와이프 신분으로 처음 와서 혼자 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외롭기도 하고, 안락하기도 했다. 그 안에서 아등바등 박사과정 입시를 하면서 일희일비 울고 웃은 날들이 셀 수가 없다. 장장 12시간의 화상 면접도 이 집에서 치렀다. 대기번호의 불안을 안고 뒹굴다가 합격 소식을 처음 받은 장소이기도 했다.


미국 이주 첫해의 다사다난함을 함께한 집이다. 완벽하진 않았을지언정, 안전하고 포근한 집이 되어주었음에 고마움과 애틋함을 느끼며 작별을 했다. 첫 번째는 뭐든 특별한가 보다.







이윽고,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고된 이사의 노동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옮기고 나르기를 반복하며 숱하게 많은 짐들을 풀었다. 동시에 없는 가구들을 구비하느라 쇼핑 - 주문 - 언박싱 - 조립 - 쓰레기 처리 및 청소 - 쇼핑 - 이 굴레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타겟, 월마트, 리스토어, 이케아, 아마존을 모두 섭렵했다. 이제는 아무 마트에 들어만 가도 현기증이 날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일주일 남짓 되는 시간 동안 몸이 매우 고됐다. 그렇지만 점점 구색을 갖추어가는 집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다.

무한 조립의 굴레


새로 이사하는 집은 코로나 이후부터 직접 투어가 금지되어 동영상 가상투어만 진행한 채 계약을 해야 했다. 때문에 실제로 가봤을 때 집이 이상하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동영상보다 훨씬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아 안도했다. 오래되어 낡은 집이지만 깔끔하고 감성이 있다.


결혼하고 좋은 점 중 하나는 살 집을 온전히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것이다. 집을 꾸미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둘이서 직접 내린 결정이 온전히 반영된 결과가 된다. 어느 것 하나 신경 쓰지 않고 거저되는 것이 없어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취향으로 가득한 공간에 산다는 것은 독립이 주는 가장 달콤한 보상이다.



인생이 늘 그렇듯 좋은 일만 오지는 않겠지만, 다채로운 삶에서 오는 희로애락을 담대하게 겪어내고 싶다. 이사와 동시에 삶의 책장이 휘리릭-하고 빠르게 넘어가고 있다. 곧 있을 개강을 앞두고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 집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새 집에서의 새롭고 다이나믹한 나날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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