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화햇 Jul 19. 2023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삶이 또 장난을 칠 때,


한국이다.


원래는 미국이었어야 하는 오늘이다. 올해는 문서운이 없는 해인가 보다. 상반기에는 입학 행정으로 곤혹을 치렀는데, 이번에는 또 비자가 안 나온다. 비행기 표를 늦추고 또 늦춘다. 성수기라 자리도 잘 없거니와, 변경 수수료가 줄줄 새나간다. 마음 편히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다. 비자가 나오면 요이땅 돌아가야 하는데,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는 대기 신세다. 약속을 잡기도 조심스럽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주는 미국 집 이사다. 원래 오늘쯤 도착해서 2-3일은 늘 그랬듯 시차 적응에 시달리다가, 컨디션을 회복하면 천천히 짐을 싸서 이사를 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비자가 늘어지기 시작하면 몇 달도 걸리고 답도 없다는 후기들을 읽으며 덜컥 겁이 난다. 그렇게 어렵게 합격했는데, 입학은...... 할 수 있는 거겠지?


며칠 내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안 되면 안 가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언젠간 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죽을 둥 살 둥 매달리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이 없다. 되려면 될 것이고, 안되려면 안 되겠거니 생각해 본다.







어쩌지 못하는 것들을 내버려 둔 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본다.


   원래 이맘때 미국에 도착하면 이사 준비와 더불어 8월 후반 개강부터 투입될 티칭 수업 준비를 하려고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과목인데다가 영어로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공부와 준비를 시작하려 했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긴장된다. 다행인 것은, 100% 온라인 수업이라 사전에 녹화를 떠놓고 업로드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천천히 교과서를 읽고, 스크립트와 PPT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업을 맡은 과목이 한국 커리큘럼에는 없는 과목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혼자 맨땅에 헤딩하며 공부해야 하는 것이 영 어렵다. 다행히 지도 교수님과 랩 선배가 잘 아는 분야인지라 언제든 물어보고 도움 구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된다. 어쨌든 이런 것을 배우려고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려는 것일 테니, 어렵지만 낯선 이 과목을 애정 해봐야겠다. 이민자와 소수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과목인데, 다양성과 차별, 이민자와 그 자녀 세대의 정신건강에 관해 한 학기 동안 공부하는 수업이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치려니 양심에도 콕콕 찔리고 학생들에게 벌써 미안한 기분이 들지만, 죄책감을 최소화할 수 있게 최대한 머리에 많이 넣어야겠다.





미션 컴플릿, 145/145

   작년부터 천천히 준비하던 연구의 데이터 컬렉션이 끝났다! 팔로업 데이터 수집이 조금 남아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6월 1일부터 시작해서 밤낮으로 작업하던 데이터 수집이 마무리되어 무척 뿌듯하다. 여행 다니는 동안도 낮에는 관광을 하고 밤에는 숙소에서 이 작업을 하고 있었을 만큼 열심히 했던 터라, 끝이 났다는 사실에 너무나 홀가분하다. 인간대상 연구 특성상 참여자들에게 욕도, 칭찬도 많이 받았던 연구였다(즐거웠다, 다신 보지 말자^^). 이제 이 데이터를 잘 지지고 볶아야 할 텐데, 하릴없이 초조한 요즘 정신을 쏟기 딱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가까운 미래의 일정조차 한  앞을 확언할 수 없는 요즘이다. 씩씩한 하루살이가 되어 그날 그날을 알차게 살아가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연말에 써볼 법한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