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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Sep 18. 2023

갈수록 처절해지는 미국 박사 과정 생존 일지

나는 어디, 여긴 누구?


개강 4주 차 생존, 5주 차 진입.



    주차가 거듭될수록 피로도와 생존 난이도가 수직 상승한다. 이번 주말은 특히나 부담감, 압박감이 심해서 정신적으로 고단했다. 가만히 앉아서 무엇이 이렇게 힘든가 생각해 보니, 새로 시작하는 일들을 앞두고 스스로 엄청 압도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로 오는 주에는 집단상담 부리더도 시작하고, 개인 슈퍼비전도 시작하고,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와 랩 업무도 개시하게 되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싶다.



   나열한 일들 중 아예 안 해본 성질의 일은 없지만, 영어 핸디캡을 안고 있으니 특히나 소통하는 일들에 있어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보다. 대체로 해보니 몇 번 해보면 어떻게든 다 하게 됨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일을 앞두고 긴장되고 곤두서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덕분에 주말 내내, 특히 일요일 오후 내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다 지쳐 나아지는 중이다.



   새로운 일에 앞서 대범하고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시작하면 좀 좋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 번째로, 타고나길 예민한 성정에다가 두 번째로, 영어도 못하는데 상담 심리를 한다고 뛰어든 업보지 뭐 어째- 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하루 종일 공부와 과제를 한답시고 책상 앞에만 있어서 더 위축되나 싶어 아무렇게나 챙겨 입고 이어폰을 끼고 산책을 다녀왔다. 역시 불안은 몸을 움직이는 게 답이다.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본 동네의 석양이 무심하게도 참 아름다웠다. 해 질 녘이 아름다운 우리 동네 사진이다.






    산책을 하면서 선선한 공기도 마시고 하늘에 감탄하며 슬슬 걷고 오니 마음이 한 뼘 가벼워졌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주말 일요일 저녁 루틴인 일주일 치 B.T.C. 아침 식단 준비에 착수하였다. 때때로 단순노동이 그렇게 기꺼울 때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정갈하게 한 주의 시작을 준비하며, 틈틈이 좋았던 지난 한 주를 돌아본다.







    이번 한 주는 학부생의 난이었다. 티칭 수업에서 대학생 아이들에게 주말 마감되는 과제를 하나 내줬었는데, 질문을 하도 많이 해서 오피스 아워와 이메일 질문 답변을 하는데 시간을 꽤 썼다. 눈물.......! 배정받은 자리가 조금 답답하고 어수선해서 자주 가지는 않는데, 오피스 아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다음 주도 몇 번 가게 될 것 같다.

   인상적인 것은, 한 수업 안에서 질문하러 오는 학부생 아이들의 수준이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정말 생산적이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들고 와서 컨설팅을 요청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강의 계획서나 렉처를 전혀 보고 듣지 않고 와서는 대뜸 과제가 뭐냐며, 이해시켜달라는 아이들도 있다. 또, 인터넷이 안돼서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겠다는 이메일을 보내는 엉뚱함과 더불어(이메일은 어떻게 보내는 거니, 휴대폰이 되면 테더링 하면 되잖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한마디도 없다가 데드라인이 지난 후 제출하게 해달라는 당당한 아이들도 있다.


    너무 엉뚱해서 그저 웃기게 봐주고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대학생 시절을 되돌아보건대, 너그러이 용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반성)




   전생에 식물이었는지, 아니면 올림픽공원 앞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계절 좋은 날 피크닉 가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한다. 동기들을 선동하여 학교 가장 예쁜 잔디밭에서 점심 피크닉을 했다. 행복했다. 날도 선선하고, 동기들도 즐거워하고, 치킨도 맛있고 한 주에서 제일 신났던 시간이었다. 올리브영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오색찬란한 피크닉 담요를 차에 항시 두고 다니는데, 국산 담요가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이 광활한 잔디밭에 우리 밖에 없으니 더 신났던 것 같다. 이렇게 공공연한데 프라이빗 한 장소가 어딨냐고 감탄하며, 각자 사는 이야기를 신명 나게 털었다. 작년에는 매일 혼자 피크닉 하느라 많이 외로웠는데, 무리와 소속이 생기니 즐겁다. 낙엽이 서서히 물들고 있기에, 이 발칙한 미국 무데뽀들과 가을의 피크닉을 더 살뜰하게 잘 누리겠노라 다짐해 본다.











   이번엔 또다시 혼자 공부하는 시간들이다. 15장짜리 페이퍼 과제가 있어 아주 씨름을 하고 있다.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 받아서 오레오 치즈무스를 사 먹었다. 맛있다. 사실 지난주에 먹은 바나나 푸딩을 먹고 싶었는데, 매점에 없어서 아쉬운 대로 또 다른 달달이를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현재까지는 그래도 바나나 푸딩이 1등이다. 과제 많은 날 주에 하나씩 사주고 있다. 학교 건물의 에어컨이 여전히 너무 세고 추워서 점심은 꼭 바깥에 나가서 볕 아래서 몸을 녹이며 먹는다.






   주차가 거듭될수록 두 늙다리 만학도 부부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집에 있을 때 남편과 둘이 이러고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공부와 씨름 중이다. 누가 누가 더 미쳐가나 내기하는 듯하다. 혼자 공부하던 남편이 이상 행동을 많이 보이고 있는데, 받아줄 여력이 없다. 나 역시 페이퍼가 안 써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쳐가는 남편을 매몰차게 쳐내고 가던 길을 계속 가 본다. 끝없이 내쉬는 한숨이 화음을 이룬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한 주 끝에 불꽃 테니스를 쳤다. 무려 2시간을 쳤다. 원래는 테니스가 잘 안 쳐지면 시무룩해지기도 하고 했는데, 이번 주는 그저 팡팡 때리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잘하고 못하고 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뭔가 패버릴 것이 필요했을 뿐이다. 앞으로도 잘 치는 것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방점을 두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운동하는 순간만큼은 스스로가 공을 팬다고 느꼈지만 다음날과 다다음날은 오히려 두드려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시고 피곤해서 조금 힘들었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그 순간 짜릿했으니 되었다. 앞으로도 자주 애용하게 될 예정이다.






   점점 단출해지는 집밥과 늘어만 가는 외식의 향연이다. 몸과 마음이 고단해지다 보니 가정 업무에 다소 힘을 덜 들이려고 하고 있다. 에어프라이로 휘뚜루마뚜루 튀겨낸 치킨과 샐러드, 베이컨을 얹은 샐러드 파스타, 그리고 해물파전과 김치만두다. 아래층에 사 먹은 음식은 스테이크 & 쉐이크, 순댓국과 부대찌개다. 이번 주도 힘들다는 핑계로 아주 자알 먹고 다녔다. 새로 오는 주는 더 잘 먹어야겠다.






    학기 초에 과제로 1:1 인터뷰를 했던 교수님 한 분이 해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상담심리학 프로그램은 불안과 바쁨의 퐁당퐁당 연속이라고. 매우 공감하고 있다.


   학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부담과 로딩이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힘들어하면서도 어찌저찌 해내고 있다. 잘 해내고 있음을 더 알아주려고 노력해 보며,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할 한 주를 조심스레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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