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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06. 2023

미국 상담심리 박사과정생의 하루 일과

힘듦과 감사함 사이를 유랑하는


    근 몇 주 간 스트레스와 불면에 시달리다가 겨우 살아난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박사 과정, 녹록지 않다.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많이 힘들다. 그나마 숨을 옥죄던 페이퍼를 제출하고 나니 숨통이 조금 트여 비로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상담심리 박사과정의 일과를 천천히 기록해 보려 한다. 조금 갑갑하고 덩달아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음을 사전에 고지하는 바다.


발걸음이 무거운 퇴근길

    매일 일정의 순서나 내용이 조금 상이하지만 가장 바쁜 날과 보통의 날, 그렇지 않은 날을 비교해 보려고 한다. 먼저, 가장 바쁜 날의 일과다.


  - 9:45 ~ 12:15 고급 상담이론 수업

  - 12: 30 ~ 12:50 이동, 점심, 상담 준비

  - 13:00 ~ 13:50 심리 상담 1

  - 14:00 ~ 16:00 접수면접

  - 16:00 ~ 17:00 심리 상담 및 접수면접 문서화 작업

  - 17:00 ~ 17:50 학부생 강의 슈퍼비전 수업

  - 18:00 ~ 18:50 심리 상담 2

  - 18:50 ~ 20:00 심리 상담 문서화 작업 및 행정 업무


    가장 바쁜 날은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일정이 하나 끝날 때마다 바로 뒤의 일정 장소로 후다닥 뛰어서 이동해야 한다. 끼니를 챙기기도 시간이 부족해서 수업 듣거나 일할 때 땅콩버터 초콜릿 바를 씹어 먹고 상담에 들어가고 하는 식이다. 일정을 마치고 나오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데, 고단함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과제가 있는 시즌에는 이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서 페이퍼에 착수해야 되는데, 집에 가서 앉으면 피곤하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가서 두 배 세 배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또 하루 일과 때문에 종일 밀린 각종 잡무나, 이메일 답장 등을 귀가 후에 처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두 번째 출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일과가 바쁜 것은 모든 학생들이 다들 비슷하고,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서 과제를 진척시켜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늦은 밤까지 머리를 쥐어짜내서 과제를 마치고 고단함에 절여졌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해 힘들었다.


고단한 퇴근길


     다행인 점은 매일 이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날마다 로딩이나 일정이 상이하다. 다음은 중간 정도 바쁜 날의 일정이다.

   - 10:30 ~ 11:50 집단상담 전 리더 트레이닝

   - 12:00 ~ 12:50 집단상담

   - 12:50 ~ 13:15 집단상담 후 리더 트레이닝

   - 15:00 ~ 16:00 연구 미팅

   - 16:00 ~ 17:00 상담 센터 스태프 미팅

   - 17:00 ~ 17:50 심리 상담 1

   - 18:00 ~ 18:50 심리 상담 2

   - 19:00 ~ 19:50 심리 상담 3


    이날은 비교적 아침에 일과 시작 시간도 늦고, 점심 먹을 시간도 충분한 편이라 전날보다는 한결 수월하다. 그래도 이 정도 일과면 소화하기에 나쁘지는 않지만 여전히 퇴근하고 집에 가면 시간도 늦고, 과제와 잡무, 메일 처리를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과제를 진척시키려면 늦은 밤까지 무리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편한 날의 일과를 소개해 보려고 한다. 편하다는 것은, 비로소 착석하여 밀린 일을 쳐내거나 과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9:00 ~ 15:00 자율 스터디(과제/학부생 티칭 수업 채점 및 질의응답/ 연구 업무/ 수업리딩)

   - 15:00 ~ 16:00 연구 미팅

   - 16:30 ~ 17:30 랩 미팅

   - 18:00 ~ 19:00 심리 상담


    자유도가 높은 날에는 동기들이랑 카페나 도서관에 모여 '따로 또 같이' 스터디를 한다. 한데 모여 있지만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 산적해있는 해야 할 것들을 제각기 진행하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 스터디를 하는 이유는 자유도가 높은 시간에 혼자 있으면 피곤하고 늘어져서 자버리기 때문이다. 또, 틈틈이 수다를 떨면서 같이 스트레스도 풀고 신세 한탄도 하고, 연구는 어찌 되어가는지 확인도 하는 등 여러모로 의지가 많이 되는 이유도 있다.


    지난주에는 과제 데드라인이 3개가 몰려있어서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삶이라는 것은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숨통을 다시 틔어 주고 계속 살아가라고 한다. 참 신기한 것은 어떻게 그 시간을 다 버텨서 제출도 제때 다 하고 지나왔다는 것이다.






    살아내는 것은 너무 힘들지만, 어쨌든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서 공부와 실습,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나름 크다. 전반적으로 상담심리 분야에서 시설적으로나 체계적으로나 한국보다 환경이 너무 좋은 것도 사실이라, 힘들어 우는소리는 할지언정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고 있다. 교수님들이나 스탭들도 굉장히 지지적이고, 도움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많다. 시간이 되면 이런 부분들도 한 번 정리를 싹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끔 힘들 때는 스스로가 얼마나 좋은 기회 속에 존재하고 있는지 잊고 툴툴거리기도 한다. 힘듦이 지나가면, 차분히 글을 쓰면서 감사한 마음을 장착하고, 지금-여기에만 주어진 것들에 200% 충실히 소화해 보기로 다짐해 본다.



오늘도 잘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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