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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Jul 13. 2024

타의적 갓생으로의 복귀

미국 박사생의 여름


기우였다.


    5, 6월 신나게 놀면서 이전 포스팅에 어딘가 조금은 불안하기도 하다고 적은 바 있었다. 여러 전현직 대학원생 슨생님들께서 그때를 즐기라고 해주셨는데, 과연 그 말이 맞았다. 두 달간 지도 교수님께 안팎으로 바쁜 일이 많이 생기셔서, 연구 프로젝트가 홀드 되었다. 불안하기가 무색하게 7월이 되고, 미국에 복귀해 시차 적응이 채 되기도 전부터 랩 일이 짠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몰아쳤다.


   그저 폭풍전야였구나. 그래도 두 달 꽉 채워 세상 게으르게 펑펑 놀면서 충전이 많이 됐는지, 일이 크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고, 오히려 의욕적인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다. 일이 제아무리 많아도 학기 중보다는 여전히 느슨해서 할만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놀고먹는 시간이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깨달으며, 타의적 갓생으로 돌아간 미국 라이프를 돌아본다.



   복귀하자마자 저널 논문 심사들과 IRB 심사 결과, 그리고 새로 데이터 모으는 프로젝트 개시까지 눈코 뜰 새 없어졌다. 하여, 날을 잡고 혼자 카페에서 마음 꽉 붙들고 일들을 하러 아침 일찍 나왔다. 집에 있으면 자꾸 드러눕고 싶고, 넷플릭스랑 유튜브만 보게 돼서 어떻게든 나와야 한다. 학교 자리는 현재 방학에 리모델링 중이라 사용이 불가하다.


   Major revision 받은 논문은 분석과 표가 어마 무지하게 많은 논문이었는데, 재분석을 돌리게 되면서...... 모든 표의 내용을 다...... 수정...... 하게...... 되었다...... 표 12개 수치를 다 바꿔야 한다....... 내 시력과 거북목을 실적과 맞바꾸겠구나. 그래도 뭐 반려 안된 것에 의의를 두며, 다시 일개미 모드로 들어가 열심히 수정을 해본다. 교수님도 too laborous 해서 very sorry라고 하셨다. 그래도 리뷰어가 하라면 해야지 뭐 어떡해. K-대학원생 출신의 로동력을 보여드리갔소, 교수님 동지.


   노동과는 별개로, 쓴 논문 내용이 재밌어서 조금 신난다. 실제 미국 대학에서 일반인 교직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심리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실험실 세팅이 아닌 일상에서 사람들이 배운 심리 기법들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는지, 또 어떤 기법들이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지 분석한 연구다. 참여자 수도 많고, 연구 설계도 섬세해서 결과가 다채롭게 잘 나왔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아 스포는 못하지만 여하튼 꽤 흥미롭다. 마이너 리비전 받은 논문은 무려 퇴사 욕구와 관련된 것인데, 그 결과도 재미있다.



어서 스포 하고 싶지만, 이 수요없는 공급을 참아보겠다.

    같은 날, 비장하게 마음먹고 아침 9시부터 카페에 출근 해놓고는 노트북 충전기에 씌울 돼지코를 집에 두고 왔다. 이런 낭패가 있나. 한국에 잠시 다녀왔더니 돼지코 없이 쓰던 게 그새 익숙해졌다 보다. 이날 카페에서 엉덩이 무겁게 할 일을 다 끝내고 가려고 했는데 배터리 때문에 결국 한 3시간 정도 하다가 돌아왔다. 조금 사기가 꺾이는 순간이었다. 돼지코 잘 챙기자......!







  난데없이 웬 시상식 드레스인가 싶을 것이다. 백상예술대상 아니고, 동기 결혼식 옷을 찾고 있다. 이런 유의 드레스를 입는 것이 결혼식 하객 드레스 코드라고 한다. 미국 하객룩을 사기 위해 Temu를 처음 깔아보았다. 다행히 저렴하고 예쁜 드레스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3년 전에 웨딩촬영 때 빌려 입은 것 외에는 살면서 이런 옷을 입어볼 일이 없었는데, 이렇게 또 사게 될 줄이야. 유학생 라이프는 매일이 새로움과의 조우이자 경험 확장의 연속이다.  


  영 새로운 경험에 설레기도 하고, 안 입어본 스타일의 옷에 당최 어떤 색, 어떤 디자인이 나한테 잘 어울리는지도 몰라서 어렵기도 하다. 미국 사이즈가 몸에 맞기는 할지, 땅에 질질 끌리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당연히 함께 신을 힐이나 걸칠 주얼리도 하나도 없는 터라, 이것저것 사야 할 게 많다. 귀찮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8월에 있을 동기 결혼식이 무척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동기와 폭포가 있는 자그마한 동네 공원에 하이킹을 다녀왔다. Lower Casacades Park라는 곳이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코스가 짧아서 힘들지도 않고, 폭포 소리도 시원한 게 여름에 오기 좋은 스팟이었다. 앉아서 수박이나 하나 깨 먹으면 딱 좋았겠다. 하지만 폭포까지 들고 가기 너무 힘들므로 패스하였다. 멍하니 폭포 앞에서 힐링도 하고, 두런두런 수다도 나누고 왔다. 자연과 가까운 것은 확실히 시골 살이의 장점이다. 동기가 가을에 단풍 들 때도 예쁘겠다며, 또 오기로 하였다.








  얼마 전 우리 집의 소비요정 남편이 달걀 삶는 기계를 새로 들여서 아침마다 삶아 먹고 있다. 딸기잼 바른 크로아상 하나와 삶은 계란 하나, 그리고 라떼 이렇게 딱 먹으면 세상 행복한 아침이다. 일이 없는 날은 요렇게 먹고 남은 커피를 가지고 나가서 홀짝이며 뒤뜰에서 멍 때리거나, 식탁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방학이여, 영원하라!






   여름방학이 되니 삼시 세끼 챙기는 게 일이다, 일. 나리네서 얻어먹은 뒤부터 계속 따라 하고 있는 마파두부밥, 그리고 좋은 곡물과 채소는 전부 때려 넣은 슈퍼푸드 샐러드와 소고기 스테이크다. 한 끼 정도는 정키 하게 먹고, 한 끼는 이렇게 건강하게 챙겨 먹으려고 노력 중이다.







   방학에 건강도 열심히 챙기고 있다. 살면서 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고 있는 듯하다. 남편이랑 다니니 강제성이 생겨서 더 자주 가게 된다. 김종국이랑 같이 사는 기분.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확실히 웰빙이 수직 상승한다. 주로는 헬스장에 가서 달리기와 천국의 계단을 하는데, 이번 주부터는 날이 꽤 더워져서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개강 전까지 신나게 헤엄쳐 보아야겠다. 사실 아웃도어 풀을 진짜 좋아하는데 칸쿤에서 피부를 너무 태워서 이제 더 태울 엄두가 안 나서 못 가고 있다. 당분간은 실내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해 보려 한다.



해야 할 일들이 다시금 생겨나고 있지만 그래도 방학이라는 타이틀 하에 학기 중보다는 안온한 삶을 살고 있다. 새 학기 시작 전까지는 계속해서 잘 쉬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다. 틈틈이 열심히 쉬는 방학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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