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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07. 2019

친구가 나에게 불 같이 화를 냈다

어디에서도 찌그러져 있지 않을게...


    오늘 친구가 성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서 약속에 나타났다. 밤새 나 때문에 열이 받아서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다크서클은 있는 대로 내려와서는 라이더 재킷까지 갖춰 입고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는데 순간 흠칫-하며 긴장했다. 웬만하면 궂은소리, 큰 소리 잘만 치는 지만 이번엔 밖에서 쭈구리처럼 험한 소리를 속절 없이 듣고만 왔기 때문이다 젠장 맞게도.



     친구는 (미혼이지만) 우리 애가 어디 가서 얻어맞고 온 기분이라며, 안 그러던 애가 왜 특정 상황에서만 그러냐며 내게 속상함을 뿜어냈다. 나에게도 어려운 장면은 따로 있고, 처음에는 친구의 과격(?)함에 압도되어 당최 그 속상한 마음이 보이지 않고 온통 방어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잘 들어보니, 친구는 내가 어디 가서도 지지 않고 험한 소리에도 되받아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지 못하고 체면 하나 지키려다 찍소리도 못하고 온 나를 보며 속이 터졌던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피하지 않고 맞서기로 했다. 자기 일 보다 더 화내는 친구를 보면서, 이 사람을 봐서라도 내가 어디 가서 쭈그러져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울컥했다. 나를 믿어주고, 내게 마음을 써주는 사람을 봐서라도 당차게 세상을 마주하고 싶어 졌다. 나는 사실 겁쟁이고, 때론 힘이 미약하기도 하지만 옆에서 이렇게 혼내어도 주고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어 때로 강인해질 수 있는 것 같다.



      그 친구가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똑같이 속상해하고, 똑같이 말했을 것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 또한 그런 순간에 힘이 되어주고 싶다. 앞으로도 이렇게 같이 쭉 걷고 싶다. 서로가 약해져 있을 때, 영 힘을 못 쓰고 있을 때 옆에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존재로서 말이다.



       



   이지볶, 고맙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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