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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Sep 13. 2019

미혼이 유부에게 듣는 명절

다들 어떻게 그렇게들 해내는지


어릴 때야 명절 때 친구들과 모이면

용돈을 얼마 받았는지 이야기나 했겠지만,

나이가 차고 또 결혼을 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그들의 무용담과 고생 담을 듣게 된다



하루 종일 카톡에 나타나지도 못하다가

잠깐 나타나서 쏟아내는 숨가쁨들을 듣노라면

평생 연애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미혼인 데다가,

개인플레이를 사랑하며 사람을 멀리하는, 약간 독특한 아버지를 둔 덕에

우리 가족은 명절에 어딜 안 간다

명절에 친척들을 보러 전국을 순회한다거나,

꽉 막힌 고속도로의 일부가 되어 본다거나,

추석 KTX나 고속버스 예약 대란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덕분명절 연휴는 항상 심심할 정도로

고요하고 편안한 시간일 수 있었다




이번 추석도 예외 없이 그렇게 보내고 있는데

결혼한 친구들의 연예인 행사 뛰는 것 못지않은 일정을 듣게 되었다

짧은 연휴에 시댁, 시댁의 외갓집, 친가 집, 시골 어르신 집, 친정을 찍고 온다는 것이었다

아이돌 전국 투어 공연보다 빡빡한 이 일정은 뭘까 싶었다



워낙에 편한 명절을 추구하는 집에서 자라온 탓에,

또 체력이 원최 소박한 탓에 상상만 해도 병이 날 것 같았다

실감도 나지 않는 일정을 위로하면서 친구가 애잔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고 그랬다



압도되는 마음을 안고 남자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린 연애만 하자고 했다

남자 친구는 '어른'이 되면 순회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했다

그럼 나는 애인가 하고 순간 빈정이 상할 뻔했지만, 이 연휴를 이토록 편하게 보낼 수 있다면 뭐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지금 내가 누리는 미혼의 명절이 소중한 리미티드 에디션임을 깨달았다

어쨌든 나는 비혼주의가 아니며,

그렇다고 네버랜드에서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내게 몇 번의 꿀명절이 허락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많이 쉬고 놀아두어야겠다는 결론이다



송편 사들고 블투 스피커 가지고  추석 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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