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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11. 2019

나는 10월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다

무엇이 당신을 살게 하나요


    출근하자마자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Michael Buble의 캐럴 앨범 'Chiristmas'를 전곡 재생하였다. 10월 초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 말이다. 일하는 곳에서 동기들끼리 룸을 쓰는 덕분에 작은 음량의 음악을 곧잘 틀어놓곤 하는데, 내가 BGM을 담당하고 있다.  캐럴을 틀자 따뜻하고 아늑한 심상이 떠오르면서 숨이 막히던 삭막한 회색 일터가 조금은 말랑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비로소 숨이 조금 쉬어진다.





 

   근래 일하는 곳에서 여러모로 힘든 일들이 많았다. 일 자체도 많아졌고,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쳤다. 최근 눈에 띄게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어떻게 뭘 생각하면서 견뎌야 할지 점점 처음 들어올 때의 의미나 동기가 옅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스스로 답할 수 없을 것만 같달까. 요즘 안 힘든 날이 없어 보인다고 친구들이 말해 줄 정도였으니까.


벌러덩- 드러눕고만 싶은 마음


     지금 당장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거의 없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저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면서 견디고 버텨야 하는 부분들이 대부분이다.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괜찮기 위해 있는 것을 찾아 할 뿐이다. 그게 '소확행'이 생긴 맥락이자 이유일 것이다. 자그마한 것이라도 진정 나를 즐겁게 해 주고, 살게 해주는 것들을 찾게 되는 마음일 테니까. 어떤 것을 생각하면서 자그마한 희망이나 설렘을 느끼고, (좌절될 때 좌절되더라도)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만한 것은 꼭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과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빅터 프랭클은 우슈비츠에서 생존해 나온 유태인 출신이다. 극한의 상황인 수용소에서도 아내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과 수용소에서 겪은 것들을 기록하고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로써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꼭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아닐지라도 각자의 삶에서 매일매일이 생존이고, 치열한 고군분투의 현장임을 잘 안다. 그 안에서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지 아는 것'은 곧 나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게 꼭 대단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삶의 동력이 된다면 소소한 것이든 우스꽝 스러운 것이든 무슨 상관이랴.



     내게는 지금, 크리스마스가 그것이 된다- 당분간의 나를 살게 하고 버티게 할 작은 삶의 의미 말이다. 그때쯤이면 지금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일들이 웬만큼 정리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황에 치여 작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잠깐씩 보는 수밖에 없다. 평일은 평일대로, 주말은 주말대로, 공휴일은 공휴일대로 각자의 사정과 상황이 안락한 만남을 허락지 않는다.



     가장 바쁠 때가 좀 지나가면 번잡한 것들을 좀 제쳐 놓은 채로, 추운 바깥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존재의 온기와 마음을 원 없이 느끼면서 따뜻한 음료 한 잔을 홀짝이고 싶다. 끝도 없이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싶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다며 능청을 떨고 싶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정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꾸역꾸역 크리스마스까지 살아 버틸 것이다.






     일러도 너무도 이른 설레발이지만, 다행히도 남자 친구가 쿵짝을 맞춰주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군말 없이 함께 하려 해 준다. (크리스마스에 같이 부르자고 진즉부터 했던 노래의 랩 파트를 연습하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틈틈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상상을 하고 호들갑도 떨면서, 척박한 나날들에 인공호흡을 불어넣어 간다.



    같이 공간을 쓰는 동료들도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캐럴을 맘껏 틀라고, 더 들으라며 격려해 주었다. 갑자기 캐럴을 틀어 당황했었는데 그런 사연인지 몰랐다며 깔깔 웃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10월의 한 복판에서 캐럴을 들으며 보고서를 써내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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