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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Apr 04. 2020

뒤를 돌아보면 앞이 보일까

천천히 돌아보다, 삶을


   삶을 살다 보면, 늘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물음표가 있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누군가 이게 옳은 길이고 정말 잘 가고 있다고 한들 나는 머지않아 또 이 의문을 제기하고 말 것임을 안다. 내면이 느낌표로 정리된 게 아니라, 혼란스러운 물음표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퇴근길 하늘


    확신에 찬 사람들이 부러웠다. 자기 자신이 뭘 원하고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 이들은 강단이 있다. 지금 설령 그게 잘 풀리지 않고 현실에 가로막혀 애먹고 있더라도 무너지거나 멈추지 않을 수 있는 내적인 힘이 그들에겐 있고, 작동함을 느낀다. 확신이 부족하면, 일이 조금만 안 풀린다 싶으면 불안하고 놓고 도망부터 가고 싶어 진다. 남들 말에 휘둘리게 되고, 뚝심 있게 나의 길을 가지 못한다.



    얼핏 보기엔 스스로 원하는 대로 개성 있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나, 사실 돌이켜보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선택했을 뿐이다. 내게는 힘듦을 무릅쓰고 삶을 갈아 넣어서라도 얻거나 성취해보고 싶었던 것이 별로 없었다. 그저 안온하고, 편안한 게 좋았다. 그에 반해 내가 살아왔던 환경에서는 늘 '대단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뛰어나게 잘'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고통을 인내하고 목표를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해서 나는 그냥 일찍이 다 포기하고 안 하는 노선을 타 왔던 것 같다.







    과거를 탓하기엔 너무 커버렸고, 주어져버린 삶을 놓아버릴 순 없었다. 지금부터 나를 180도 바꿔서라도 대-단한 성취를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적당히 하며 그냥 그렇게 사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다. 다만 내가 오늘의 내가 되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나는 누구인지 고민하고 싶을 뿐이다. 나라는 사람은 그저 치열한 성취보다 안온함을 조금 더 좋아할 따름이다. 지금은 그럴 있는 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고, 때때로 열정을 요구받을 위협과 불편감을 종종 느끼기도 하는 그런 상태다.



    한 때 화려한 자격이나 스펙에 목맨 적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건 나의 욕구는 아니었다. 내면화된 타인의 욕망 혹은 막연한 불안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이력들을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여 일하고 있지만서도, 사실 별 감흥이나 불안은 없다. 삶을 갈아 넣은 대가로 받는 특정 자격이 그렇게까지 영광스럽거나 내게 크게 가치롭게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쥐어짜면 기대 이상의 결실이 나옴을 경험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나의 성과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나를 쥐어짠 사람의 악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자발적으로 갈아 넣거나 엑기스를 뽑아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서 혼자 두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 늘 다시 태어나면 남유럽에서 태어나 낮잠이나 퍼자며 느릿느릿한 속도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이 하루면 할 일을 일주일에 해가면서 말이다.


  

    이런 내가 살기에 이 반도의 템포는 너무 빠르며 온도는 너무도 뜨겁다. 미적지근한 내가 이 핫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유튜브 넷플릭스가 판을 치는 시대에 영상보다 텍스트가 좋은 나는 거의 종이책 아니면 브런치와 블로그 글들을 소비한다. 주말 아침마다 튜너가 달린 라디오로 93.1 주파수를 맞춰 들으며, 킹덤이 뭔지 박새로이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살아간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한 때,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꽤나 열정적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열정을 불태우고 싶을 만한 일이 없어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불을 붙이면 또 잘 타오를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믿는 구석이 있다. 그치만 그럴 만한 일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은 모르는 채로, 삶을 놓지 않는 최소한의 절전모드로 살고 있는 것 같다. 꼭 가슴 뛰는 일이 있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고, 잘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 늘 물음표 투성이다. 어쩌면 아직 그럴만한 일을 못 만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다시 나를 불태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삶 속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그러는 동시에, 에이~ 굳이 그게 꼭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연쇄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삶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사실 그건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기다릴 시간과 여유가 있다.



    조금은 천천히 내면의 답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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