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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Dec 18. 2021

2021년, 용감했다

내년에는 더 씩씩하자

집약적 성장의 해,

나를 넘은 한 해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 어찌 보면 너무나 진부한 클리셰다. 하지만 올 연말에는 꼭 적고 넘어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몇십 년 후에 봐도 올 해는 삶에 가장 중요한 해로 꼽힐 것 같다. 그것은 어떤 한 두 가지 이벤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해를 아우렀던 시간들 덕분이다.



결과가 실패라고 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겁 많은 존재였던가. 힘듦을 두려워하고, 쉽게 포기하고, 안 될 것 같으면 두드려도 안 보는 안전 지향적, 성공지향적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올 한 해 얼마나 용감무쌍하고 씩씩했는지 모른다. 칭찬해주고 싶다. 얼마나 가능성 낮은 일에 무모하게 도전했던가. 예전 같으면 신포도처럼 쳐다도 안 봤을 것이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성공이라는 결과물만 중요했을 뿐 과정의 가치를 몰랐다. 타인이 판단해서 내주는 결과에 따라서, 나만 알던 노력의 과정을 쉽게 폄하하곤 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스스로 이루고 싶은 것들을 한 땀 한 땀 찾았고, 내내 한 계단씩 구르고 깨지며 어렵게 등반하다 보니 연말이 되자 어느새 정상에 있었다. 이런 말도 들었다- 네가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고.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다고- 묘한 전율을 느꼈다. 나에 대한 주변의 기대는 낮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알 바 아니고 나는 끝까지 해냈고, 또 마쳤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결과물을 내고 어떤 처분이나 판단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지금쯤 왔어야 할 소식이 오지 않은 것을 미루어 보건대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이번만큼은, 결과가 실패해도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한계를 뛰어넘고 스스로를 확장한 과정만큼은 누가 뭐래도 성공했다고 긍정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잊어라

 

  그래. 사실 결과나 좋지 않으면 나는 또 한 번 좌절할 것이다. 속상하고, 화나고, 우울한 시간들을 지나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겠지. 목표했던 것이 다 이뤄지는 시나리오는 아닐지라도, 삶은 어떻게든 펼쳐지고 마니까 예상치 못했던 그림을 맞이하겠지. 결과를 기다리는 일은 여전히 두렵고, 떨리고, 힘든 시간이다. 더군다나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또 한 번 크게 실망하겠지만 말이다.


  꼭 기대했던 인생이 아니어도 괜찮다. 살다 보면 기대했던 줄거리, 시나리오가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떻게든 다른 모양새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원하는 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들 세상 끝난 것처럼 굴지 않으려 한다. 이번 결과를 기다리며 소치올림픽에서의 김연아가 참 많이 생각났다. 자신의 수행에 최선을 다하고 나서 주어지는 메달 색깔은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올 해는 이 말의 의미를 가슴으로 이해했다.






힘듦에 대한 단상


  오지게 힘든 순간도 많았다. 좌절스러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리게 싫다. 깨달은 것은, 어떻게 하면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피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힘든 일을 수용하고  부딪혀 나가느냐는 것이다. 선택이 힘들어지는 이유는 힘든 것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었다. 무던하지 못한 나라는 사람은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도 힘들어할 것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힘듦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예 지워버리기로 하였다. 덜 힘든 옵션을 찾다 보면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고되고 힘든 삶 속에서 사람을 지탱해주는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올 한 해 큰 여정을 함께했고, 앞으로 더 힘들고 더 행복한 여정을 함께 할 사람이 있다. 어쩌면 혼자서 내 한계를 넘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항상 불안정하고 예민했던 마음속 기지에 엄청 푹신한 카우치 하나가 생겼다. 이제는 삶이 힘들면 여기 와서 쉬면 된다. 그래서 과감히 힘들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일이 고되고 거칠어서 그만둘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을 때였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50%, 버티고 싶은 마음 50%이 팽팽하게 맞서 싸워 좀처럼 답이 나오질 않는 상황이었다. 그때, 함께하는 점심 커피 한 잔을 생각하며 버티고 싶은 마음을 51%로 기울여보면 어떠냐는 사람이 있었다.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당차고 패기로운 1%인가? 세상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1%라고 생각했다. 세상 일이 언제나 큰 확률이 지배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또 버티기를 선택하였다.







  이렇게 돌아보니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 정말 많은 한 해였다. 스스로도 알고 경계하는 부분이지만, 자동적/무의식적으로 삶의 부정적인 것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해서 이렇게 중요한 긍정적인 경험들을 글로 적고, 다시 읽어보는 과정이 내겐 무척이나 중요하다. 올 한 해 힘들다 말을 수 천 번도 더했겠지만 소중하게 얻은 것도 많았음을 잊지 않고자 한다.


   다가오는 한 해에는, 즐거운 일만 있으라는 되도 않는 기대는 하지도 않겠다. 힘든 일 좀 없으면 좋겠다는 실없는 소리도 않겠다. 그저 올해보다 한 발 더 용감하게 삶을 모험하고, 어려움에 부닥쳐 나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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