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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Dec 11. 2020

사무실의 다육이

꽉 채운 한 해 살이

  갓 입사하고 한 일주일쯤 됐을 때다. 하루 온종일 있는 회사가 어딘가 삭막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점심시간 근처 꽃집에 가서 미니 다육이 다섯 명을 데려왔었다. 다육이는 손이 많이 가지도 않고 알아서 내버려두면 잘 큰다길래 편한 마음으로 데려왔다. 작고 귀여운 다육이들을 눈 가장 많이 가는 모니터 바로 아래에 두었다. 자리가 초록초록해지자 마음이 한결 위안이 되었다. 식물이란 생명체가 그런 것 같다.


2020.03 다육이 입양


   3월의 다육이, 너무 작고 귀엽다. 갓 입사했던 나도 다육이만큼 작았던 것 같다. 직업인으로서의 역량도, 자신감도, 효능감도. 동일시였을까-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돌봤다. 자리에 볕이 안 들어 매일 아침 창가에 옮겨 일광욕을 시켜주고, 해가 지나갈 시간이면 다시 자리로 복귀시켜 주었다. 창가는 추우니까.


  저 가운데 있던 제일 큰 친구(핑크 화분)는 데려올 때부터 잎사귀 끝이랑 뿌리가 좀 상해있었다. 동료가 왜 이리 상한 애를 데려왔냐고 했다. 잘 돌봐주면 금방 제 색과 생기를 되찾지 않을까 싶었다. 끝은 상해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나름의 예쁨이 있는 아이다. 사람도 식물도 지금 당장 보기에는 조금 상한 부분이 있을 지라도 따뜻한 볕쬐고 물 주면 회복하는 힘이 있다.

 


2020.04 다육이 일광욕.



  다육이는 햇살 아래 두면 그 색이 너무나 찬란하다. 그냥 단순히 '초록'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다채롭고 예쁜 색이다. 볕을 받고 있는 식물이 내는 색은 정말 예술이다. 책상에 생기는 그림자도 어여쁘다. 일광욕을 시켜주면서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다. 확실히 일하는 곳에 식물을 두는 건 좋은 옵션이다. 틈틈이 돌봐주면서 마음이 많이 정화된다.


  걱정했던 분홍 화분 다육이도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잎사귀에 노르스름하게 있던 부분이 점차 알찬 초록색으로 뒤바뀌고 잎도 많이 자랐다. 마음이 좋다.



2020.07 다육이 폭풍성장


   바쁠 땐 일광욕도 못 시켜줬지만 물 주는 것만은 잊지 않았더니 고맙게도 엄청 잘 자라줬다. 다육이의 폭풍성장을 지켜본 지인이 샐러드 해먹을 거냐고 해서 한참 웃었다. 다육이는 확실히 초보자도 쉽게 키우기 좋다. 식물 몸체가 너무 커서 이제 분갈이를 해줘야 되지 않냐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분갈이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분갈이를 천천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4개월 만에 눈에 띄게 자란 다육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 회사에서 이 식물들 자라는 것처럼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되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스스로라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걸까.  나도 폭풍 성장하는 신입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20.08 지지대 다육이


  다육이들 중에서도 이 아이가 특히 너무 많이 자라서 옆으로 휘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을 보내고 오니 거의 옆으로 90도 가까이 누우려 해서 깜짝 놀랐다. 같은 파트 동료가 클립을 쭉쭉 펴더니 화분에 푸욱 꽂아주었다. 솔로몬인 줄 알았다.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잭과 콩나무도 아니고 무슨 식물이 이렇게 잘 자라나 싶었다. 이제는 뿌듯함을 넘어 분갈이에 대한 압박이 다가왔다. 식물이라고 마냥 손이 안 가는 것도 아니구나.




2020.12 메리 다육이마스



   12월이다. 한 해가 다 갔다. 끝이 둥글둥글하던 선인장은 키를 키우느라 위가 뾰족한 모습으로 변했고, 다들 손가락 한 마디 이상씩 컸다. 한 해 동안 다사다난했던 회사에서 늘 그 자리를 지켜준 아이들이다. 분갈이를 맡기기 위해 새 화분을 찾느라 발품을 팔고 돈을 들이는 것을 보며, 분을 갈지 말고 그냥 새 화분을 사라는 말도 들었다. 그럴 수 없는 것은, 정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화분들이 그냥 화분이라면 나의 다육이들은 티오피라고나 할까.


   다육이들의 새 집이 되어줄 화분을 고심해서 사고, 드디어 분갈이를 맡겼다. 분갈이는 봄에 해야 식물들이 감기도 안 걸리고 제일 잘 적응한다고 했다. 겨울에 하면 분갈이 도중 죽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걱정이다. 그렇지만 하도 몸집이 커져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꽃집에 맡겨진 아이들이 더 마음껏 클 수 있는 새 화분에 잘 옮겨져 나오길 바란다.





  회사라는 사회에 발을 들인 첫 해가 지나간다. 그간 이 공간 안에서 깨지고 구르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이 많다. 다육이처럼 눈에 보이는 폭풍성장을 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내적으로는 양분들이 차곡차곡 쌓였다고 느껴진다.


   확실히, 사회에 나와보니 더 보이는 것도 알게 되는 것도 많다. 재미로 본 드라마 미생을 이제는 뼈아프게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소속도 변하고 내년 일에 대해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부디, 더 크게 죽죽 자랄 수 있는 널찍한 화분과 비옥한 땅에 담기기를, 그럴 수 없다면 척박한 땅에서도 악착같이 몸을 키우며 잘 살아남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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