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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10. 2022

단풍빛 해외살이, 그 다채로움에 대하여

울고 웃는 나날들


   블루밍턴의 가을은 듣던 대로 정말 아름답다. 그러데이션으로 물드는 단풍이 너무 예쁘다. 색이 어찌나 쨍-한지 모른다. 한국 단풍이 약간 톤 다운된 버건디 느낌이 메인이라면, 블루밍턴의 단풍은 형광 빨간색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아예 한 색깔만 물든 나무보다는, 한 나무 안에 초록색, 노란색, (새) 빨간색이 다 들어있는 나무가 제일 좋았다. 지나가며 사진을 안 찍기가 어렵다. 남편이랑 장 보러 가는 길에 겸사겸사 드라이브를 했는데, 운전을 하면서 기분이 정화됐다. 볕도 따사롭고, 풍경도 예쁘고 기분전환이 많이 됐다.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며 한참 상기된 채 마트에 도착했다. 이날 장 보기에는 특명이 있었는데, 바로 긴축재정에 알맞게 긴축 장 보기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요새 환율이 정말 미친 듯이 올라서, 유학생 부부에게는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은행으로부터 잔고가 얼마 이하로 떨어졌다는 경고 메시지도 받았기에, 각성하기로 하였다. 필요한 것들을 카트에 다 담고 보니 평소보다 훨씬 덜 산 것 같아서 자신 있게 계산대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평소보다 되려 40달러가 더 나온 것이다. 머릿속에 번개가 팡! 치는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어서 부랴부랴 영수증을 다시 봤는데,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개별 품목은 죄다 2달러, 3달러짜리들 밖에 없고, 꼭 필요해서 산 프라이팬과 거름 채가 추가됐을 뿐 음식은 한참 덜 샀는데 말이다...... 속상했다. 줄여야 될 판에 돈을 더 썼으니 기분이 찝찝했다. 도대체 지출은 어떻게 줄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림은 너무 어렵다.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집에 와서 장본 것들을 냉장고에 정리했다. 그런데 바보같이, 다 먹었다고 생각하고 새로 산 재료들이 냉장고 깊은 뒤 쪽에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새로 산 베이컨도 아직 한참 있었고, 냉동새우도 그랬다. '아, 이번에 안 사도 됐을 것들인데' 싶은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울컥했다. 조금만 더 꼼꼼하게 살피고 샀으면 굳이 안 써도 되는 돈이었다. 한 번만 더 생각했으면 됐는데, 있는 것을 또 사느라 줄여야 할 지출을 오히려 늘리고 왔다.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알게 모르게 재정적인 압박감이 컸던 것 같다. 찔찔 눈물을 닦으면서 반성했다. 다음에는 마트에 가기 전에 냉장고의 남은 재료부터 꼼꼼히 살펴보고 가기로...!




 

  해외살이라고 하면 가장 손쉽게는 핑크빛 여행 같은 삶을 기대하곤 한다. 물론 그것도 한 색깔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냥 핑크빛만 있는 건 아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이국적인 분위기에 설레고 생존의 불안에 울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러데이션 단풍색 나무를 제일 좋아하듯, 삶도 하나의 달콤한 색만 있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여러 색이 다 들어있는 상태를 어여삐 여길 수 있으면 좋겠다.



   요새 같이 일하는 교수님이 그러셨다. "We are all growing" 이라고... 오늘은 부족함에 속상했지만 그걸로 인해 또 자라면 되니 괜찮다.



우리는 모두 자라는 중이다.



토닥, 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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