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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14. 2022

미국에서 영어 배우기 (2)

비단 영어뿐 만은 아닌


  아침 8시 반 수업을 위해 맞춰둔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기 무진장 어렵다. 집은 어둑어둑하고, 그대로 다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 오늘은 결석하는 거야- 결심하는 찰나, 알람이 다시금 울린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생각하며 돌아오지 않는 정신을 거의 머리끄덩이 잡고 겨우 끌고 와 본다. 떠지지 않는 눈에 시원한 안약도 넣어본다. 집이 북향이라 가장 아쉬운 점은, 잠이 깨지 않는 것이다. 본디 사람을 각성시키는 것은 볕이라 배웠거늘,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그 녀석을 대신해서 기술로 빛을 소환해 본다.



  온라인 수업이라 그나마 조금 더 잘 수 있다. 오프라인이었으면 한 시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했을 것이다. 초보라 깨지도 않은 정신으로 아침에 운전을 해서 가는 것도 위험했을 것 같다. 여러모로 다행이라 생각하며, 후다닥 아침거리를 카메라 보이지 않는 곳에 두고 잠옷 바람으로 캠을 켠다. 오늘도 1등은 아니다. 다들 어찌나 부지런한지, 온라인 강의실에 도착하는 순서가 그날의 대답 순서가 된다.


카메라 안보이는 곳에서 한 입 와앙- 먹고 안 먹은 척



  오늘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친구가 제일 먼저 와있다. 키이우에 살다가 홀로 미국에 유학을 와 있는 대학생이다. 고향 걱정을 하느라 아침부터 뉴스를 보고 울고 왔다고 한다. 안쓰럽고, 안됐고 이 기분을 참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제일 먼저 와 있다는 것도 저릿한 부분이다. 고작 잠이랑 싸우느라 늦게 들어온 게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온라인 수업이라 집에서 아기를 무릎에 앉히고 화면은 켜지 못하고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다. 이 수업에서는 영어보다도 사는 태도를 먼저 배우게 된다. 졸려서 뚱한 채 들어왔다가도 다른 학생들을 보고 각성해서 수업에 참여한다.



  수업은 문법, 어휘, TED 강연 듣기, 자유 토론, 미드 표현 배우기 등 다채롭게 진행된다. 여러 컨텐츠를 돌려가며 배우기 때문에 매일 3시간씩 듣는 수업이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문법이나 어휘 같은 경우 설명을 들은 다음 하나씩 돌아가면서 빈칸에 맞는 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순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해야 한다. 생각보다 수업 시간이 금방 잘 가고 재밌다. 교재는 선생님이 구글 클래스룸에 pdf로 공유해주는 것을 아이패드로 보면서 사용한다. 한국 사교육처럼 인텐시브하지는 않고, 조금 더 느슨하고 부담이 없다. 숙제가 없는 것도 부담을 덜어주는 데에 한몫한다. 대신 매일 출석해서 계속 공부하고, 복습하고, 말하고 듣는 게 핵심이다.



  티칭을 할 때에는 메인 세션에서 다 같이 배우고, 배운 걸 응용하거나 자유토의를 하는 시간에는 3명씩 소그룹으로 묶어준다. 하루 수업에 평균 10명에서 15명 사이로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하루는 이상하게 학생들이 안 온 날이 있었다. 학생은 총 두 명, 선생님까지 세 명 밖에 안 왔다. 원래 Private Tutoring이 엄청 비싼 거라며 오늘 수업은 로얄 수업이라고 능청을 한 번 떨어보았다. 셋이서 까르르 웃으며 수업을 시작하려던 찰나 갑자기 우르르 학생들이 들어와서 Private Tutoring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기왕이면 학생들이 많이 와서 복작이는게 활력 있고 좋다.



  8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꽉 채워 수업을 듣고 나면 허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요즘은 아침에 꽤 쌀쌀해서 몸도 으슬으슬하고, 속도 비어 뜨끈한 국물이 그렇게 당긴다. 잘 못하는 영어를 쓰려고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에너지 소모가 많다. 많은 시간을 들여 밥을 먹을만한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다. 수업을 듣고 나면 주로 전날 남은 찌개나 국물 요리를 바로 데우거나, 금방 되는 뜨끈한 라면이나 칼국수로 급하게 요기를 하고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아침 시간을 꽉 채워 영어 수업을 듣고 나면 왠지 갓생을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조금 피곤하지만 하루를 길고 알차게 쓰는 기분이 든다.




  이제 겨우 꽉 채운 한 달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점점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차근차근 꾸준히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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