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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햇 Oct 19. 2022

블루밍턴 어른이의 슬기로운 가을방학

들어는 봤나, 가을방학


  지난주는 작고 소중한 가을방학이었다. 나흘뿐인 방학이 세상에 어디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름 붙이고 쉬는 게 귀엽고 신기했다. 남편 학교는 중간고사를 마치고 잠깐 생기는 텀을 가을방학이라 명명하는 것 같다. 카운티 영어 클래스도 똑같은 기간 가을방학이라고 수업을 쉬었다. 아무리 짧아도 방학이 신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8월부터 쉼 없이 각자의 길을 달려온 우리 부부도 한 텀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근래 바쁜 일들도 많이 생기고, 길게 봤을 때 아직은 적응 기간이었기에 심적으로 여유를 내기가 어려웠다. 가을방학 덕분에 새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열심히 살았던 두어 달을 격려하는 시간을 비로소 가질 수 있었다. 단풍이 가장 예쁜 때에 방학을 선사받은 덕에 단풍잎이 떨어지기 전 가을의 정취를 알차게 즐기고 왔다. 그 소소한 기록을 담아 보았다.




브라운 카운티 주립 공원(Brown County State Park)


   이곳은 공원 자체도 좋지만 오고 가는 길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이다. 굽이진 도로 양옆에 가지각색의 나무들이 쭉 펼쳐져 있어 드라이브으로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 조금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느 구간부터 휴대폰이 안 터져서 드라이브하다가 음악 스트리밍 하던 것이 뚝 끊겼다. 아직도 시골 가면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 있구나 싶어 생경했다. 조난당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잠시 생각하다가 답이 없어서 말았다.

 

   나무들이 크기는 또 얼마나 큰지, 아주 그냥 훤칠하다. 단풍 명소로 유명한지 사람들과 차가 꽤 많았다. 하이킹 코스도 1코스부터 10 몇 코스까지 난이도 별로 잘 닦여있어 가볼만하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도 많고, 반려동물과도 많이 찾아서 공원 자체도 예쁘지만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가 알콩달콩 더 예쁘다.



   여러 코스 중, 호숫가 주변을 하이킹하고 싶어서 7코스를 골랐다. 7코스는 하이킹 난도가 낮아서 부담 없이 걸어 다닐 수 있고, 호수 옆에 바로 딱 붙어서 걸을 수 있어 경치가 좋다. 7코스 시작점 옆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세우고 내려서 걸어갔다(주차는 현금 7달러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호수 뷰다. 호수 주변 나무들이 빼곡하게 단풍으로 물들어 있어 정말 예뻤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눈에 꼭꼭 담고 하이킹을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하이킹 코스다. 오솔길에 감성이 그득그득해서 한 컷 담아왔다. 이렇게 좁은 길이 호수 둘레로 나있었다. 눈이 닿는 곳마다 노랗게, 붉게 물이 들어있었다. 겨울에 오면 조금 황량할 것 같다. 봄이나 여름에도 꽤나 색다르게 아름다울 것 같다. 예쁜 자연을 보면 엄마 아빠가 참 좋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놀러 오시면 한 번 같이 와보는 것으로 찜해두었다.



   위의 사진에 호수 뷰를 볼 수 있게 조성해 놓은 나무로 된 쉼터에서 잠시 쉬어갔다. 하이킹이 힘들어서는 아니고, 도시락으로 싸온 과일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싸온 사과를 사각사각 베어먹는데, 역시 소풍 나와서 까먹는 간식이 최고다. 경치 좋고, 사과 달고, 날씨 딱 좋고. 삼 박자가 잘 맞아 기분이 좋아진다. 단순히 혈당이 올라서가 아니다.



    이 지점은 딱 하이킹 코스의 반환점이 되는 중간 지점이다. 반대쪽 시작점에서 찍을 때도 예뻤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뷰도 예쁘다. 호수도 더 가까이 있고, 볕도 잘 들어온다. 한 바퀴를 천천히 도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을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코스였던 것 같다. 공원을 다녀온 다다음 날부터 최저기온 영하를 찍으며 너무 추워져서, 이날 다녀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고 한다.




잉크웰 커피&베이커리(Inkwell Coffee & Bakery)



   방학이 다 좋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남편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삼식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끼니마다 요리를 하다 보니 너무 지겨워져서 남이 해주는 밥을 먹으러 나갔다. 외식 물가가 비싸서 가능하면 외식을 안 하려고 하는 편이었으나, 방학 마지막 날 너무 밥이 하기가 싫어 큰맘 먹고 나가서 브런치로 플렉스 했다. 집에서는 주로 밥과 국수를 먹는 편이라, 오래간만에 빵이 먹고 싶어서 카페 겸 베이커리 집에 갔다.


   일요일 한 시쯤이었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다른 가게들은 비교적 한산하던데 이 카페는 사람이 꽤 많았다. 바깥이 잘 보이는 예쁜 자리를 잡았다. 집 밥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한 번씩 다운타운에 외식을 하러 나올 때, 마음이 너무 설렌다. 별것도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콥 샐러드와 와플, 터키 샌드위치, 스크램블 에그와 펌킨 크림치즈 머핀을 시켰다. 이상 7만 원짜리 브런치 되시겠습니다. 비싼 가격에 남편에게 타박을 먹었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남이 해주는 밥은 너무 맛있다. 이런 날도 있어야 또 힘을 내서 밥을 하지!



블루밍턴 동네 산책


    보통 운동 갈 때, 스포츠센터까지 차를 끌고 간다. 차로는 10분이지만, 걸어서는 편도 30분, 왕복 1시간 거리다. 이날은 남편이 차를 끌고 나가서 한 번 걸어가 보았다. 늘 다니던 거리도 걸어서 가보니 느낌이 또 다르다. 되게 좋았다. 가을의 한 가운데 있는 느낌도 들고, 스윽-보고 지나치던 것들도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한 번씩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낙엽들이 머리에 휘감기거나, 따귀를 훑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게 가을이지 싶었다. 아래는 우리 동네 가을 사진전이다.











   운동을 마치고 또 30분을 걸어 집에 갈 생각에 조금 막막하기는 했지만, 제일 좋아하는 오리지널 밀크 버블티 당도 25%를 한 잔 사서 또다시 힘을 내서 걸었다. 이렇게 큰 사이즈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 사이즈뿐이라고 해서 그냥 받아왔다. 밀크티만 먹다 죽을 사이즈였다. 아직도 미국 음식의 양은 늘 버겁다. 그렇지만 최애 음료와 함께 또 신나게 가을 석양을 바라보며 동네를 걸어왔다.





   가을방학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씨가 부쩍 추워져 최저기온 -1도를 찍었다. 냉랭해진 날씨에 전기장판이 등판했다. 추워지기 직전 가을을 따스하게 잘 누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살면서 이렇게 단풍놀이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많지 않았는데, 블루밍턴에 살게 되면서 매일매일 예쁜 풍경을 접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제는 잎들이 거의 다 떨어지고 조금씩 삭막해지고 있지만,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또, 가을방학을 계기로 그간 열심히 달려온 것을 격려하고, 더 씩씩하게 새로운 과제를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도전적인 4분기와 연말도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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