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 하강식의 추억

~ 때로는 바람도 우리를 울다 웃게 하는 천사 이어라 ~

by 강신옥

지금도 가끔.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행사장에서 국기를 바라보노라면 온몸에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눈앞에 선연하게 되살아나는 기억 때문이다. 초임교사 시절이었다. 1980년대, 그때는 매일 오후 다섯 시면 전국적으로 국기 하강식이 있었다. 아침에 게양했던 국기를 내리는 의식이었다. 길을 가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나오면 멈추어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6학년 담임이었던 나도 늘 아이들에게 국기 하강식 수칙을 강조하곤 했다.


한여름 어느 날. 아이들이 다 하교한 빈 교실에서 혼자서 업무처리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운동장으로, 교실로 울려 퍼졌다. ‘벌써 다섯 시?’ 라며 잠깐 벽시계를 쳐다만 봤을 뿐 나는 하던 업무를 하기에 바빴다. 애국가는 혼자서 교실을 맴돌다 사라졌다. 그때였다. 교실 스피커로 교장선생님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교장실로 오라는 호출 명령이었다.


‘뭔가 잘못된 일이 있구나.’ 직감하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온갖 잡다한 추측으로 복잡해졌다. 하루 일과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교장실에 도착했다. 여름이라, 교장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누군가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반 개구쟁이 ‘영수’였다. 장난을 좋아해서 가끔 야단맞을 때도 있지만 6학년답지 않게 또래에 비해 어리고 순수해서 밉지 않던 아이였다. ‘그 장난 끼가 뭔 사고를 유발했나 보다’ 짐작이 갔다. 교장실에 들어서자 아직 화가 누그러지지 않은 교장선생님이 사태를 설명하셨다.


사실인즉 이랬다.

교장선생님이 열린 창문으로 운동장을 바라보며 하강식을 지켜보고 계셨다. 애국가가 나오자 놀고 있던 모든 아이들이 정지 모드가 되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엄숙한 순간. 우리 반 영수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소리까지 질렀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난리법석을 피웠다는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영수를 데려가서 단단히 혼내주라고 당부하셨다. 나에 대한 질책으로 들리기도 했다. 영수 대신 내가 혼난 기분이었다. 역시 초임교사의 티를 내고야 말았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온 얼굴이 땀범벅이 된 영수. 엄연한 사실 앞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영수를 먼저 교실로 보냈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교장실을 물러나왔다. 참 허탈했다. 하강식 수칙을 그렇게 늘 강조했건만…….

그때마다 잘 지키겠노라고 목청껏 “예”라고 외치던 아이들. 그 우렁찬 함성을 내가 너무 믿었나 보다.


교실로 와서 영수를 보자 그저 말문이 막혔다. 맥없이 긴 한숨부터 나왔다. 영수는 나를 보자

“선생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선생님 혼나게 해서요.”라며 울먹였다. 그제야 영수는 교장실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눈물과 함께 쏟아놓기 시작했다.


진실은 이랬다.

그때 영수는 운동장에서 풍선을 가지고 2학년인 동생과 배구를 하고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한창 승부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동생에게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게 했다. 영수는 풍선을 잡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려는 심사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때맞추어 바람이 불게 뭐람. 풍선이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영수는 풍선을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마음대로 안 잡히니 자신도 모르게 소리까지 지르고 말았다. 결국 풍선은 바람 따라 학교 담장을 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영수는 울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말고 나는 ‘풋’ 웃고 말았다. 바람, 풍선, 영수의 삼파전 동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로소 영수의 얼굴도 마음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마음 이리라. 얼마나 애가 탔을까……. 가슴은 먹먹한데 나는 웃고 말았다. 영수에게 웃어 보이고 싶었다. 영수를 믿어주고 싶었다.

하강식의 규칙보다, 풍선을 잡으려는 순수한 동심이 내 마음을 풀어주고 말았다.


나는 역시 프로교사가 아니었다. 애국심 고취를 위한 하강식.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될 수는 없었으니, 햇병아리 초임교사의 감성이었을까. 나는 결국 한 마디도 야단을 칠 수 없었다. 차마 ‘그까짓 풍선이 뭐 길래’라고 훈계할 수 없었다.


더구나 평생 봐야 할 국기. 국기를 바라볼 때마다 꾸중 들었던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국기를 바라볼 때마다 영수의 마음이 차가워지고, 나도 겸연쩍어지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나도 사실 교실에서 업무 보느라 하강식 수칙을 지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나는 영수의 등을 두드리면서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 바람둥이를 따라간 풍선 때문이야.”라고 달래주었다.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나에게 영수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영수 몰래 잠시 느꼈던 허탈함과 실망감이 다시 자부심과 보람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그날 나와 영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지금도, 국기를 바라볼 때마다 시공을 넘어 우리는 소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믿어도 될지 모르지만 나는 믿고 싶다. 영수도 나처럼, 국기를 바라볼 때마다 눈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애국가를 가슴으로 따라 부르지 않을까!


어느덧 중년이 되었을 영수도 이젠 ‘풍선보다 국기’라는 생각이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을까!


참 다행이다. 언제나 따뜻한 시선으로 국기를 바라볼 수 있어서…….





우리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때가 많았다.

때로 내 잘못이 아니라 지나가는 바람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을 때가 있지만

우리는 그 바람을 탓하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믿기에 웃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20190502_162236[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