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의 수호천사 ~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교통 지도하는 녹색어머니들을 보면 한 줄기 뜨거운 바람이 가슴을 지나간다.
하필이면 그런 날!
봄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2월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찬바람이 살을 에는 날, 그것도 학년이 끝나는 마지막 날. 우리 반 어머니들이 녹색 어머니 교통지도를 하는 날이라니…….
‘담임이 덕이 없어서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혼자서 민망하기도 했다.
어쩌랴, 사전에 계획되어 있는 일이었으니…….
일 년간 녹색 어머니 봉사를 해주신 어머니들께 감사인사라도 할 겸 일찍 출근길에 나섰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해 가고 있는 데 핸드폰이 울린다. 이 시간에 울리는 핸드폰은 뭔가 뜻밖의 일을 알리는 소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교통봉사 어머니의 전화가 아니길 바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왜 이런 것은 잘 맞힐까?
역시 그랬다. 어떤 어머니가 가정에 문제가 생겨 교통봉사를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학년이 끝나는 이 시점에 뭐라고 더 부탁을 하겠는가. 그동안 수고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덧붙일 뿐이었다.
어쩌면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그 사소한 것이 찬바람과 함께 마음속까지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 시점에 누구에게 그 자리를 대신 봉사해달라고 부탁을 하겠는가! 삼십여 명의 아이들을 떠올리고 그의 엄마들을 떠올려 보았다. 워킹맘이 아니라도 갑자기 그것도, 이렇게 얼어붙는 날씨에 부탁을 하느니 차라리 내가 대신 서고 마는 것이 속 편할 일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라고 들떠서 아수라장이 될 교실을 생각하니 그것도 불안하고 마음에 걸렸다.
되든 안 되든 부탁은 해봐야 할 일이었다. 허락은커녕 전화 끊자마자 욕이라도 하지 않을까. 과연 교사라는 권위가 오늘도 살아있을까. 점점 더 무력해지다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안되면 내가 대신하더라도 일단 해보기로 했다.
염치 불고하고 어떤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제 막 아침식사가 끝나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던 참이었단다. 거절 받을 마음의 준비부터 하고 있었기에 어머니께 부담을 주지 않고 교사 체면도 세우려고 용건만 간단히 말했다.
그 엄마는 일언지하 (一言之下)에
“아이고, 그런 일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가겠습니다.”라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부탁드려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자
“다른 일도 아니고 우리 아이들 안전을 위한 일인데 당연히 해야지요. 선생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아들 보호하는 김에 다른 아이들도 함께 보호하는 것이지요.”라는 것이다.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추위도 잊어버렸다. 그저 갑자기 어떤 따뜻한 딴 세상으로 옮겨와 있는 듯했다.
일 년이 압축되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솟으며 울컥했다. 그 허락은 아이들만 지켜준 것이 아니었다. 학년 마지막 날이어서 더 무력감을 느낀 나까지 일으켜 세워주고 있었다.
찬바람마저도 시원하게 받으며 걸었다.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근처 교통 지도하는 곳을 순회하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잠시만 서 있어도 발이 시리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정말 길에 보일러라도 놓아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부탁을 받고 갑자기 나온 그 어머니도 노란 깃대를 열고 닫으며 열심히 교통지도를 하고 있었다. 급히 나오느라 외투만 걸치고 나왔나 보다. 그의 민낯이 더 당당하게 빛나고 있었다.
순회를 마치고 교실에 들어왔다. 학년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라는 해방감에 떠들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눈에 들어왔다. 내 아들을 보호하면서 다른 아이들도 보호해줘야겠다는 엄마의 마음. 행여나 누구라도 다칠세라, 갑자기 부탁해도 한걸음에 달려와 노랑 깃발을 힘껏 들어준 엄마.
시동만 걸면 언제든 에너지가 작동하는 ‘엄마’라는 자리가 위대해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이 순간 모두 이렇게 교실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구나……!’
꽁꽁 얼어붙는 추운 날씨에도 따뜻한 마음과 밝은 얼굴로 우리 아이들을 지켜준 어머니들, 그리고 아침에 갑자기 부탁한 것인데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단숨에 달려와 준 그 어머니……!
해피엔딩으로 학년을 끝나게 해 준 그 어머니들.
그날의 일기장에 나는 그 엄마들을 '아이들의 수호천사'라고 쓰고 읊조렸다.
어디 그 엄마들 뿐이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