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싫어하던 겨울을 사랑하게 만든 천사 ~
삼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해 1월 어느 날, 나는 아침 일찍 안동을 출발해서 대구에 도착했다. 그날 오후, 대학입시를 위한 예비소집 때문이었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은 면접시험도 봐야 했다. 다행히 절친한 친구 미영이가 내가 시험 보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미영이는 입시 때 나의 숙박과 안내를 기꺼이 책임져 준다고 했다. 나도 친척집보다 친구가 더 편했다. 넉넉하게 2주 전에 친구에게 편지로 일정을 통보해 두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머릿속에 영화 속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내가 플랫폼을 나오면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며 무리 속에서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도착해서 보니 역 구내 어디에도 친구는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이 나오기 전이고 일반전화도 아주 귀한 시절이었다. 공중전화로 미영이 주인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발신음만 계속 울릴 뿐 수화기 저 너머는 빈집으로 느껴졌다. 뼛속을 파고드는 1월의 매서운 칼바람에 한기(寒氣) 보다 더한 불안이 마음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일단 시험 볼 학교로 가기로 했다. 친구는 이미 내가 시험 볼 대학에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우리말인데도, 아는 만큼만 들리는 숙달된 버스 안내양의 목소리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학교 앞에 도착했다. 대학 정문 앞에서 추위에 떨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친구, 서로 미안해하며 더 반가워 하리라던 나의 희망사항은 또 한 번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친구에게 피치 못할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주인집 전화로 연락만 되면 금방 해결될 거라고 스스로 다독거렸다.
대학 캠퍼스를 돌며 다시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주인집 전화번호를 누르는 손이 추위와 불안으로 떨렸다. 발신음이 울리자마자 “여보세요”라고,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이제야 드디어…… ’ 안도감이 반가움으로 들떴다. 자취생 친구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아! 이럴 수가!’ 겨울 방학하자마자 친구는 봉사활동을 떠났고, 한 2주 정도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편지도 나처럼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온몸의 힘이 빠지면서 공중전화 박스 바닥에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큰일 났구나!’ 하는 낭패감이 엄습해왔다. 아침에 출발할 때까지 부모님이 여기저기 친척집을 권해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쩌면 시험 보고 친구 집에 며칠 더 머물다 올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하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오후 2시 30분이 예비소집인데 벌써 교정 곳곳에는 수험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인 수험생들의 웃음소리가 더 유쾌하게 들리고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혼자서 여관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오늘 밤 내가 묵을 곳이 없어졌다는 것이 처량한 현실이었다. ‘시험이고 뭐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 것인가……’ 친척집에 묵기를 권하던 부모님의 뜻을 저버린 벌을 받는 것일까. 원초적인 죄책감까지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매달 실시되는 민방위 훈련 날이었다.
교정의 소나무 정원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일단 내가 가야 할 곳은 대피소인 소나무 아래였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도 한 소나무였다. 햇살을 받은 소나무 기둥이 나의 등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뭔가 서러움 같은 것이 울컥 치솟아 올랐다. 그때 “얘, 너는 어디서 왔니?” 하는 소리가 부드럽게 들렸다.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그냥 돌아보았다. 옆에 서서 대피하고 있던 한 여학생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응, 안동에서......” 울음을 삼키며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친척집에서 왔겠네?”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물었다. 낯선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의도도 기대도 없었지만 목까지 차 있던 현실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냥 자초지종을 말했다. 내 말을 듣자 그 친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선뜻 자기 집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대책도 없으면서 사양하는 나에게 그 친구는 진심으로 강권하였다. 그리고는 자신도 수험생이면서 일일이 나를 챙기며 예비소집을 했고, 자기 집으로 나를 인도했다.
만원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대구 변두리로 짐작되었다. 친구가 “여기야” 하며 발걸음을 멈춘 집. 나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사람을 데리고 오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집이었다. 방 두 개와 마당에 있는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였다. 초라한 집이라 실망했다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나를 데리고 와준 그의 순수한 온정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의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뜻밖의 불청객인데도 싫은 내색 전혀 하지 않고 나를 맞이해 주었다.
앉아서 쉴 틈도 없이 그 친구는 계속 집안일을 했다. 청소를 하고 연탄불을 갈고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밀가루 수제비와 김치가 전부인 저녁식사였지만 마치 내 집에서 편하게 먹는 것 같았다. 부모님은 일 나가셨다가 밤늦게 들어오셨다. 부모님 역시 허락 없이 남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도 잘했다고 친구를 칭찬하셨다. 누추한 집에 와 줘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별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베풀어주는 그들의 따뜻함이 고향집처럼 편안했다. 허물없는 사이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사람으로 변신한 천사들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천사들이 사는 별천지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잠자리에 누워 자신을 돌아보았다. 늘 낯선 사람이 집에 오는 게 못마땅했던 나, 가난을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며 감추기 바빴던 나, 이리저리 재고 계산하느라 놓쳐버린 나눔의 기회들, 공부한다고 집안일은 나 몰라라 했던 일까지…… 까만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되살아나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다 잠이 들었다. 단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역시 만원 버스였다.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학교까지 왔다.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자, 입학해서 또 만나자는 말을 하고 그 친구는 얼른 자기 고사장으로 뛰어 가버렸다. 엉겁결에 “정말 고마웠어.” 말하면서도 그 말이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너무 미진하고 애매했다. 못다 한 표현은 나중에 학교 다니면서 은혜를 제대로 갚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입학 후 그 친구를 학교에서 찾을 수 없었다. 몇 달 후, 기억을 더듬어 집으로 찾아 가봤으나 이사 간 뒤였다.
-2015년 월간<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장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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