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바로 옆에도 미용실이 있지만 크고 작은 미용실을 여러 곳 지나 늘 다니던 그 미용실로 간다. 마음 따라 발길이 가는 것이다.
기업화된 유명 헤어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다.
오랜 경험이 배어나는 나이 지긋한 미용사님이 혼자서 운영한다.
고급 인테리어로 장식된 럭셔리한 곳도 아니다. 머리 손질받는 의자가 세 개인 좁은 미용실이다. 세련되고 숙련된 서비스를 받는 것도 아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미용사님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있을 뿐이다.
왜 아직 단골 발길을 멈출 수 없는 것일까!
함께 즐길 만큼만 손님을 받는다.
미용실을 들어서면 작은 틈새라도 미용사님이 책을 보다 손님을 맞이한다. 한쪽 코너에 작은 책상이 있고 틈이 나는 대로 책을 보곤 한다. 보조 미용사 없이 혼자서, 시간에 쫓기지 않을 정도로만 손님을 받는다. 마음 졸이며 순번을 세고 대기하는 일이 없다. 손님이 밀리면 적당한 수에서 손님을 끊는다. 대기 시간이 기니까 다음에 오시던지 다른 곳에 가라고 한다. (물론 요즘은 예약제인 곳이 대부분이지만 그 미용실은 원래 그렇게 했다.) 혼자서 쫓기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싶다고 한다.
머리 손질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힐링캠프에 왔다가는 기분이다.
주로 단골손님들이라 머리 손질하면서 자연스럽게 미용사님이 읽은 신문기사나 책이 화젯거리다. 미용사님은 손님의 연령이나 취향에 따라 화젯거리를 내놓는다.
할머니들에게는 주로 건강에 대한 이야기다. 치매예방을 위한 음식, 운동, 노인건강 등을 내놓으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할머니들은 오랜만에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를 만나 회포를 풀고 주름도 잊어버리고 활짝 웃으며 일어선다.
중장년들에겐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정책들이나 세상살이가 나온다. 자녀교육, 고부간 문제, 부부간 문제에서 부동산 정책과 코로나에 대한 방역에 이르기까지 거의 100분 토론이 열나게 벌어진다. 때로는 대기자들까지 가세해서 열띤 공방이 벌어지기도 한다. 끝나고 나면 대책도 없이 떠들어댄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한바탕 웃고 일어선다.
어쩌다 젊은 청소년들이 들어오면 공부, 진로, 취업 고민 상담까지 자처하며 부모까지 가족을 다 알고 있으니 중간 역할까지 한다. 처음엔 쑥스러워서 말문을 닫고 있던 아이들도 머리 손질을 다 받고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뭔가 활기를 되찾아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모습이다.
종종 요금 실랑이가 벌어진다. 벽에 게시된 요금표는 그냥 장식이다.
다른 곳과 달리 요금을 더 주려는 손님과 할인해주려는 미용사와의 실랑이다. 서로 ‘그냥 고마워서’라며 현금을 주고받으며 싸운다. 카드결제를 하면 미용사님이 알아서 할인해서 결재를 한다.
미용사는 먼 길 와줘서 고맙다고 몇 천 원이라도 할인해주려고 하고, 손님은 거스름돈이라도 팁으로 주고 싶어 할 때가 많다. 서로 고마운 마음의 표시라도 하고 싶어 아름다운 밀당을 하는 것이다. 거스름돈을 사양하느라 손사래를 치며 도망치듯 미용실을 나올 때가 많다.
그 작은 미용실이 좁고 궁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왜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미용사 때문이 아닐까.
흔히 미용실에서 볼 수 있는 잡지가 거기는 없다. 잡지가 나빠서가 아니다. 미용사님의 취향이 아닐 뿐이라고 한다. 미용사님이 정기 구독하는 월간지에서부터 신문, 시집, 수필집이 좁은 책꽂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채택에 연연하지 않고 글 쓰는 즐거움에 원고 응모도 하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삶을 코디할 줄 아는 헤어코디님이 있는 미용실이다. 남달라 보이지만 즐기면서 사는 모습이 돋보여 자석처럼 자꾸 사람을 끌어당긴다.
작은 공간이지만 삶의 여유가 느껴지고 미용사님의 향기가 배어 나오는 곳이기에 자꾸 가고 싶어지는 곳이다. 머리를 손질하고 나면 머리가 마음에 드는지에 대한 관심은 날아가 버리고 뭔가 몸과 마음도 손질받은 기분이다. 헤어코디를 만난 것을 잊어버리고 삶의 코디를 만나고 가는 착각에 빠져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