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이다

~ 가을이 더 좋은 이유 ~

by 강신옥

산책을 나섰다. 기다리던 가을을 마중이라도 나가듯 가슴이 설렜다.

여름을 놓치지 않으려 절규하던 매미 소리도 잦아들었고 간간이 들리던 풀벌레 소리도 이젠 수풀에 가득하다. 춤추듯 오가는 선선한 바람이 머릿결까지 뒤로 쓸어 넘겨준다. 저절로 얼굴을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만 보면서 걸어본다. 하늘세상이 된다.


' 아, 얼마나 기다려온 가을인가!'

가을은 일단 눈을 들어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어서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땅만 보고 다녔다. 뜨거운 햇살을 피하느라 그늘만 골라서 걷느라 하늘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리쬐는 뙤약볕에 눈을 찡그리며 손차양이라도 하지 않으면 쳐다볼 수 없었던 하늘이었다.

아파트 뒷길 오솔길이지만 하늘은 드넓다. 굽은 모퉁이를 돌며 걸어도 하늘은 마냥 곧게 펼쳐져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마음을 닦아준다. 걷다 보니 모양을 종잡을 수 없는 은빛 구름이 펼쳐진다. 가라앉아 있던 기운이 일어난다.


눈부시지 않아서 부드러운 가을 하늘은 보면 볼수록 하늘 속으로 지그시 빠져든다.

세상살이를 잊어버린다. 하늘 보며 걷기만 해도,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으면서도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무료로 하늘을 보았기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일까!

'비록 땅에 발을 딛고 걷고 있지만 눈은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잊고 있었던 다짐이 다시 가슴을 울린다. 자주 하늘을 보면서 내 안에 머물러 있는 상처, 좋지 않은 기억들을 비울 수 있다면 값없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은 바람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다.

늘 지나다니는 길인데도 오늘은 “아, 시원하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새어 나왔다. 가을바람은 피하지 않고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옆에서 스치고 지나가도 반갑고, 거세지 않게 그저 몸속으로 스며들기도 하고, 얼굴에 와닿아도 바람결이 순하다.어디로부터 불어오는지 앞뒤가 다르지 않고 시원하고 정겹다.


주위를 부서지도록 흔들어놓고는 나 몰라라 사라지는 바람이 아니었다.

끈적끈적거리던 잡념들을 떨쳐주니 바람을 타고 가듯 발걸음도 가볍다. 가을의 숨결이 여름 내 더위에 지친 마음을 곱게 달래준다.


가을바람을 마주하며 걷다 보면 세상의 결이 달라져 보인다.

뜨거웠던 폭염에 헉헉거리던 삶도 지난 이야깃거리이고 이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바람의 위로를 받으며 어깨를 펴고 우아한 여유를 부려본다.



가을은 내 소유의 텃밭이 없어도 풍족하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여름이 지나간 텃밭이 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더위를 견딘 누런 호박이 텃밭을 뒹굴뒹굴거리고 , 온통 초록이었던 고추밭은 멀리서 봐도 이제 온통 붉은 고추밭이다. 가시의 아픔을 참고 자란 밤송이가 막바지 때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집 담장 너머로 뙤약볕을 머금은 대추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려있다.


내가 농사짓고 가꾼 것이 아니지만 갖가지 열매를 보며 나도 덩달아서 마음이 풍족해지고 지나간 여름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진다.

온세계를 떨게 하고 있는 코로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코 열매를 맺어준 자연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해서 머물다 간 여름이었는데 덥다고 많이도 투덜거렸다. 열매들을 키워 놓고 말없이 물러간 여름의 뒷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동네 무궁화동산에는 아직도 무궁화가 이어달리기하듯 피고 지고 있다. 여름에 대한 연민의 정이 느껴져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여전히 가을이 좋다.

하늘을 마음껏 올려다볼 수 있어서 좋고, 바람과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나이 들고 보니 가을이 더 좋은 이유는 무엇보다 여름을 지나서 맞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름을 견디어냈기에 아~! 가을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