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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Oct 31. 2021

어느 농부의 음악 콘서트

~ 10월의 어느 멋진 날의 천사~

   10월 마지막 날이다. 

걷기에 좋은 가을 날씨였다. 산책길을 걷고 있던 중 오늘도 색소폰 연주가 들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구마가 심어져 있던 밭이었다. 고구마 수확을 끝낸 자리에 배추, 무, 대파, 갓을 심은 것을 보니 김장을 위한 밭으로 보이는데 채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밭에 음악이 가득하다.      

 


 언젠가부터 밭 모퉁이에 컨테이너 박스가 자리를 잡았다.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종종 컨테이너 박스 집에서 색소폰 연주가 들려왔다. 사람들 왕래가 뜸한 한적한 길이기에 연주 소리는 밭을 메우고 동네를 돌고 허공으로도 퍼진다.      

 


 나도 모르게 가던 길을 멈추고 연주가 끝날 때까지 근처를 서성이곤 한다. 

연주를 들으며 주위에 밭을 둘러보기도 하고 꽃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금속성이지만 차갑지 않고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소폰 소리가 농부의 손길이 되어 식물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주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자란 식물이 더 잘 자란다는 연구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인지 이 컨테이너 박스 둘레의 채소들은 늘 음악 콘서트를 즐기는 행복한 표정들이다.           

 


 가을 햇살을 받으며 채소들이 색소폰 연주를 흠향하는 듯하다. 

누런 호박도 음악을 들으며 마음 편히 뒹굴고 있고, 풍부한 음량을 머금은 김장배추도 한아름이나 될 정도로 자랐고. 음악 장단에 맞추어 무청의 푸른 잎도 싱싱한 기운이 살아난다. 쪽파 속에도 섬세한 가락이 스며들고 있다. 이런 채소도 물만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닌가 보다.           

 


 무거운 쇳덩어리 컨테이너 박스 속에는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색소폰 연주 때문에 컨테이너 집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어 진다. 농사와 연주를 함께하는 것을 보면 왠지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연상이 된다. 삶을 즐길 줄 아는 연륜과 멋을 아는 분으로 짐작이 된다.           

 


 언제부터인가 그 밭길 가까이 오면 ‘오늘은 또 무슨 곡을 들려주려나!’ 라며 기대가 된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지만 그 연주를 들으며 고구마가 자라고 호박도 자라고 김장채소들이 자라듯 나도 마음 한 뼘이라도 자랐을 것 같다. 이 길을 지나는 것이 정겨워졌다.           

 


 오늘 들려준 곡은 10월 내내 내 기억을 맴돌던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이다. 

현직에 있을 때 10월이면 특히 이 노래를 많이 듣고 불렀다. 때로는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온라인 반주에 맞추어 혼자서 리코더 연주를 하기도 했다. 온종일 아이들과 일에 시달렸던 지친 마음에도 시끄럽던 교실에도 가을 하늘이 내려와 담기는 노래였다. 그래서 10월은 매일매일이 어느 멋진 날이었다.           

 


 산책길에서 오늘 채소들과 함께 듣는 그 연주는 또 색다른 맛이었다. 

초록 채소들과 함께 콘서트장에 와 있는 신선함이 있었다. 교실이 아닌 탁 트인 하늘과 바람으로 울타리를 한 콘서트장이었다. 오늘 10월의 마지막 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농부가 들려주는 연주를 하늘과 바람과 무, 배추, 쪽파와 함께 들으며 마음이 가을에 물들었다. 올해도 10월을 참 멋지게 보내게 되어 감사했다. 11월도, 12월도 매일매일이 어느 멋진 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노래에 실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가끔 두려워져 지난밤 꿈처럼 사라질까 기도해

              매일 너를 보고 너의 손을 잡고 내 곁에 있는 너를 확인해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음악을 들으며 감사 일기로 10월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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