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재활용품 분리 수거장으로 갔다. 대여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도 엄마 따라서 분리를 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종류별로 분리하다 보니 종이 수거푸대에 던져진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책이다. 이게 웬 떡이냐!
여기, 재활용품 수거장에서 만나다니 더 반가웠다. 횡재였다.
코로나 이전에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이다.
제목에 끌려서 서가에서 우선 뽑았는데 읽다 보니 단숨에 끝까지 읽었던 책이다. 가볍게 읽었지만 감동이 깊었던 책이다.
대어를 낚은 기분으로 재활용 푸대에서 책을 주워 들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책장을 넘겨 보고 있을 때였다.
“ 와, 로봇이다. 완전 최고야.”라고 아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기쁨을 감추지 못한 아이가 엄마를 향해 로봇을 번쩍 들어 올렸다. 내가 책을 들어 올린 것과 닮아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아이 엄마는 로봇에 흠집이 많고, 집에도 장난감 많다고 버리라고 해도 아이는 막무가내다. 로봇 형제들을 가슴에 안고 좋아했다. 할 수없이 아이 엄마는 로봇 담겼던 플라스틱 통까지 챙겼다.
장난감 통 들고 가는 엄마도, 로봇을 안고 뒤 따라가는 아이도 신이 났다. 우연의 일치인데 재활용품을 한 가지씩 주워서 나도 걷고 있으니 '이 무슨 행렬인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천천히 걸었다.
나도 아이처럼 책을 품에 안고 걸었다.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책 한 권에 부자가 된 기분이다. 집에 가서 빨리 책을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 착각인지는 몰라도 그 아이도 빨리 가서 로봇 형제들이랑 놀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집에 와서 따뜻한 우엉차를 한 잔 타서 마시며 책장을 넘겨 보았다.
오래전 읽었던 책이지만 감동의 여운이 되살아났다. 인디언인 조부모가 어린 손자인 주인공 ‘작은 나무’를 양육하는 이야기였다. 완전 자연의 이치로 아이를 키우던 이야기여서 요즘 시대와 너무 비교가 되었다. 방과 후에도 학원 순례를 하는 아이들이 눈에 선해서 더 관심 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 속 주인공들을 만나니 정겹고 내용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자연을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시던 할아버지, 셰익스피어를 읽어주던 할머니, 주인공과 함께 뒹굴며 놀던 개들까지 기억을 소환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로봇을 주워서 간 아이도 로봇 덕분에 오늘 하루가 새롭고 신이 났을 것 같다. 아이도 엄마도 나처럼 따뜻한 하루였으리라.
창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지만 책 제목처럼 우리 영혼이 따뜻해진 날이었다. 오래된 책 한 권, 낡은 장난감 하나에도 마음 설레고 가슴 따뜻해진 날이다.
저마다 아는 만큼 보이는 재활용품!
오래되어도 누구에게는 새로운 것이고, 값없이 얻었기에 더 감사하고, 주워 와도 부끄럽지 않고, 주는 사람 없이 받은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