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걸으며 눈만 돌리면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이 탄성을 자아낸다. 푸른 가을 하늘까지 배경이 되어주니 자연이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수채화이다.
올려다보면 곱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가을 단풍과 가을 햇살에 빛나는 황금색 은행나무에 눈이 부시지만 발밑을 내려다보면 시차를 두고 이미 떨어지고 있는 낙엽이 길을 덮고 있다.
언제까지나 화려한 단풍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로 뭇시선을 사로잡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낙엽이 바람결에 말해주고 간다. 곧 다가올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곧 비우지 않으면 안 된단다.
오후 산책길에서 전화를 받았다.
퇴직 전에 근무하던 학교 교감선생님이 연락을 주셨다. 기간제 교사로 나와 줄 수 없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나를 찾아 주다니 순간적으로 심쿵했다.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얼마나 유능해서가 아니라 임용고시가 임박해서 강사를 구하기 힘든 시기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부담이라고 거절하니 이제 위드 코로나여서 전면 대면 수업으로 전환이 되었다고 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기 미안해서 생각을 해보고 연락을 곧 준다고 했다.
산책길을 걷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벌써 교실로 가서 낯선 아이들 속에서 부대끼고 있었다. 퇴직을 한 후에도 빈자리를 메워 준다는 구실로 가끔 학교로 돌아가 보곤 했다.
내 꿈을 이룬 교직이어서인지 아이들 속에 있을 때, 내 삶이 의미 있게 느껴지곤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가도 학교에 들어서면 물고기가 물속으로 돌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했다. 오랜 세월 동안 배어 있던 교사의 말투나 몸짓이 다시 뿜어져 나오곤 했다. 퇴직 후 편하지만 변화가 없던 일상에 신선한 활력이 재생되기도 했다. 또 의외의 수입이 생겨 내 개인 생활에 여유를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 망설여졌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퇴직 연령은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헉헉대는 체력도 문제이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 앞에 허탈하고 스스로 기가 막혀 할 때가 점점 잦았다. 나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낙엽 지는 11월의 나무와 너무 닮아 가고 있었다.
아무튼 출근을 하면 어떻게 또 해나갈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만난 아이들, 전혀 모르는 학급 사정,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에 들뜨는 아이들, 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게 무디어진 감각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자신이 없었다.
마음은 화려한 단풍을 원하지만, 몸은 체력도 정신도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11월의 나무를 닮아가는 나를 부인할 수 없었다.
비울 때가 되었다.
때가 되면 화려했던 단풍이 낙엽이 되는 나무의 삶과 나의 삶이 자꾸 겹쳐 보였다. 겨울을 살아내기 위한 나무의 준비라니 그것도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