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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

~ 11월의 산책길 단상 ~

by 강신옥

11월 마지막 주다.

바람이 꽤 차다. 날씨가 허락할 때 한 번이라도 더 산책을 해둬야겠다 싶었다.

늘 다니는 같은 길이지만 주변 풍경이 일주일 전과 완전 다르다. 앙상해진 나무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 김장 배추와 무로 마지막 소임을 끝낸 텃밭, 이파리는 다 떨궈내고 바람만 가득한 나무들, 사라진 참새들……, 산책길이 휑하다.


모두들 이사를 간 것처럼 동네가 고요하다.

비우고, 내려놓고, 떨어지고, 떠나간 자리에 마음이 담긴다. 그래도 왠지 허탈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제 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라고 잔잔한 긍정의 눈길을 보낸다. 저만치 앞에 낙엽도 ‘삶이 다 그런 거지’라며 맞장구를 치듯 바람결에 춤추듯 떨어지고 있었다.


11월 들면서야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다. 처음에는 제목에 사로 잡혀 읽었던 책인데 나이 들면서 더 자주 꺼내 보는 책이 되었다. 그만큼 세상 살면서 ‘사랑받을 일’보다는 ‘미움받을 용기’가 더 필요한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이다.


최근에 다시 읽고 싶었지만 10월이 다 가도록 참고 참았다. 책 읽는데 무슨 달을 가리느냐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10월에는 참아야 할 것 같았다. 10월은 때가 아닌 것 같았다. 책꽂이 앞에 서서도 몇 번 빼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10월에는 좋은 생각만 하고 싶었다.

맑은 하늘과 곱게 물든 단풍, 아름답게 익어가는 열매들을 보며 10월을 닮은 가을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고 노래할 정도로 거의 매일이 멋진 가을날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하다’라는 10월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라면 몰라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잠시 미뤄두고 싶었다.


그렇다고 11월은 미움받아도 되는 천덕꾸러기 달이라는 것은 아니다.

찬바람 일고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는 11월에 더 읽고 싶었다. 11월이면 불평하지 않고 내 마음이 받아들여 줄 것 같은 책이었다. 10월까지 받아 누린 사랑이 기반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미움을 받아도 회복 탄력성을 작동시킬 용기가 생길 것 같은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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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휑한 11월의 산책길!

늘 그렇게 살아왔다는 11월의 나무들이 말을 건다. “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단다.

달랑 한 개 남은 감을 붙잡고 서 있는 감나무를 보며 그래도 마지막까지 까치밥을 생각해준 누군가의 온기가 가슴에 스며든다. 보는 사람마다 미소를 남겨준다.


서서히 겨울로 넘어가는 11월! 미움받을 용기까지 북돋우어준 11월이다.

그래도 비발디의 사계 중 내가 좋아하는 겨울 2악장을 듣기에도 어색하지 않은 ‘그럴 때가 되었다.’ 스마트 폰에서 재생시키자 잔잔한 바이올린 선율이 ‘삶이 다 그런 거야. 다 그럴 때가 되었지.’라며 마음을 다독여 주고, 11월을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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