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있으면 언젠가는

~ 고구마 푸른 잎이 들려준 이야기 ~

by 강신옥

책꽂이에서 오래되어 빛바랜 『좋은 생각』책을 골랐다.

책장을 넘기다 해묵은 딸의 글을 다시 읽었다. 딸을 보듯 가슴이 뭉클했다. 시들해지던 일상에 생기가 돌았다. 방안 가득 삶의 온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마음 그대로가 글이 되는 딸이다. 외면했던 삶의 기쁨과 희망을 마주한 날이다.


『좋은 생각』에 실렸던 딸의 글이다.

지난겨울이었다.

‘저 고구마를 어떻게 하나’ 다용도실을 드나들 때마다 푸념을 했다. 텃밭에서 가꾼 것이라고 친구 엄마가 준 고구마였다. ‘텃밭’이라 해서 정이 더 갔다. 농사 경험이 없으신 분이었다. “비료 주는 때를 잘못 맞춰서 고구마가 멋없이 크다.”라고 고구마를 주면서 친구 엄마가 멋쩍어하셨다. “크면 좋지요.”하며 덥석 받았다.


집에 가져와서 막상 검은 비닐봉지를 펼쳐보니 정말 지금까지 봐온 고구마와는 달랐다. 크기가 건장한 청년 팔뚝처럼 우람했다. 무 같았다. 고구마의 붉은빛은 없고 엷은 황토 빛만 감돌았다. ‘그래도 고구마는 고구마겠지……’라며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어느 휴일 아침. 엄마와 합의 하에 밥 대신 그 고구마를 삶았다. 섬유질이 많고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고구마 칭찬도 곁들였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아침은 고구마와 우유로 식사를 했다고 고구마의 화려한 경력을 들먹거렸다. 달콤한 고구마 맛을 연상하면서…….


첫 한입을 맛본 순간, 식구들이 모두 ‘고구마 맛이 왜?’ 하는 표정이었다.

식구들의 실망에 괜히 내가 민망해졌다. 먹어보니 내 입에도 맹탕이었다. 그러고 보니 삶은 고구마 속살도 다른 고구마와 달랐다. 노랗다기보다는 거의 무색에 가까웠다. 가족들은 “차라리 무는 시원한 맛이라도 있지.”라며 투덜거렸다. 고구마를 얻어 온 책임감과 이미 삶았으니 어떻게든 먹게 해야 하는 것이 나의 당면과제가 되었다.


각자에게 할당량을 주며 나는 고구마 전도사가 되었다. 원래 몸에 좋은 것이 입에는 쓰다며 약장수가 되었다. 장수식품이고 미용에도 좋다며 영양사도 되었다. 기아에 굶주리는 아프리카, 북한까지 들먹이는 국제 구호활동가로 변신도 했다. 애써서 주신 분의 정성을 생각하라며 동정심까지 자극했다. 고구마 맛보다는 웃음이 양념이 되어 한바탕 잔치로 식사를 끝냈다. 우격다짐으로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그래도 애써서 지은 농사인데 맛없다고 버릴 수는 없다는 엄마 말만 한 가닥 힘이었다. 대책이 없어 그냥 두었다. 시일이 좀 지나면 당도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아빠 말에 희망을 걸 수밖에…….


겨울 동안 다용도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문 뒤 박스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뒹굴고 있는 고구마가 맘에 걸렸다.



봄기운이 스멀거리는 어느 날이었다.

다용도실에 들어가려다 고구마와 힐끗 눈길이 마주쳤다. 이미 얼었거나 썩어버린 것은 아닌지 사실 기대 반 염려 반이었다.



아뿔싸! 군데군데 연한 보라색 줄기가 나서 자라고 있는 것, 곳곳에 작은 연둣빛 잎사귀까지 돋아나고 있는 것, 아직도 튼튼한 팔다리 모습 그대로인 것, 가지각색 고구마가 나를 올려다보고 이었다. 달콤한 맛이 아니라고 천대했던 나에게 항변이라도 하는 것일까. 아직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있었다니, 기적이었다.


가슴이 찡했다.

뭔가 미안함과 죄책감, 놀라움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줄기가 나고 연둣빛 잎이 나는 것은 얼른 큰 접시에 담고 가슴까지 물에 넣어 거실 탁자 가운데 자리를 잡아 주었다.

물을 만난 고구마는 보란 듯이 아침저녁 푸르른 잎사귀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며칠 사이에 흰색 뿌리가 수염처럼 자라며 위풍당당한 생명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줄기가 휠 정도로 잎이 충만해져 한겨울 거실에 초록 생기를 번지고 있었다.


고구마 나무라고 불러주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새잎이 돋아난 것이 눈에 띄어 기쁘고, 밤사이에도 자란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저녁에 보면 한나절 사이에도 눈에 띄게 자라 있었다. 살아 움직이듯 자라고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일상의 기쁨이 되었다.


어느 휴일 아침, 다시 몇 개 골라서 고구마를 삶았다.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당도도 훨씬 좋아졌다. 달지 않다고 구박했던 온 가족은 놀라움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뜨거워서인지 좋아서인지 ‘호호’ 불며 먹느라 손과 입이 바빴다.



제때에 달콤한 고구마 맛이 아니라고 얼마나 실망했던가. 대통령 밥상에 올라간 고구마와 비교하면서 얼마나 하찮게 보았던가. 우리 삶도 내가 원하는 때에 꼭 달콤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생각했다.

‘탁자 위에서 수경재배로 자랄 수도 있구나.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언젠가 제 맛을 낼 때가 오는구나.’


우리가 살아있음을 얼마나 기뻐하고 있을까!

살아있음 자체가 가장 큰 희망인지도 모른다. 살아있으면 언젠가 줄기가 자라고 푸른 잎이 나고 뿌리가 내릴 수도 있고, 제 맛을 낼 날이 오는데…….



매일매일 고구마 푸른 잎들이 수런수런 들려주었다.

“살아 있음이 기쁨이고 가장 큰 희망이라고…….”



20210328_113904.jpg
20211003_161547.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