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전근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퇴직이 2년을 남겨두고 있어서 그냥 떨어져 지낼까도 생각했지만 이제 나이 들고 보니 장거리 오르내리는 것도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아무리 포장이사라고 해도 살림살이를 총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삿짐을 싸면서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오래된 가구, 헌 옷을 버리는 것은 그래도 식구들이 쉽게 한마음이 되었다. 옷이나 가구는 유행을 타고 낡고 흠집이 생기기 때문이다. 정리하고 나면 공간도 확보가 되니 쾌적함을 몸으로 확인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책이었다.
책이란 유행도 없고 종이가 빛이 바래도 내용이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니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이삿짐 센터 직원 분들이 견적을 내면서 말했다. 가구보다 책 많은 것이 힘들다고 했다. 차라리 큰 가구들은 사실 들어내면 금방 끝나는데, 책은 일일이 순서대로 담아내야 하고 또 처음 위치대로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했다. 책 박스가 가구 못지않는 무게라고도 했다.
이삿짐센터 직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책도 이제 좀 덜어내고 싶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선전 포고하듯 말했다. 1년간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은 다시 읽을 가능성이 없으니 이제 좀 버리든지, 재활용품으로 내어서 다른 사람이 가져가게 하자고 했다. 쾌적한 공간, 미니멀리즘, 심플 라이프 등을 내세우며 이 기회에 오래된 책을 좀 정리하고 필요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자고 했다.
품목까지 제시했다.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 시대이고 또 시대에 뒤쳐진 정보도 많으니 여행 정보나 다른 나라 문화나 문물에 대한 책도 처분 대상으로 하자고 제안을 했다. 가족들은 동의하는 듯 침묵했다.
장롱도 정리가 되고 그릇이니 소품들도 거의 정리가 되었는데 각 방마다 책꽂이 책들은 그대로였다. 안 되겠다 싶었다. 방마다 들어가서 직접 책꽂이 책을 보면서 버려도 무방한 책들을 지적했다. 하지만 책 주인들은 머뭇거렸다. 아직은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나중에 다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가족들이 나에게 버리라고 하는 책들도 있었다. 놀랍게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다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버려도 무방하다고 눈에 띄는 것은 다 다른 사람의 책들이었다. 사실 나도 내 것은 버리려 하지 않았다. 오래되어서 빛바랜 책들, 현직에 있을 때 모은 자료들, 필사한 공책들, 신문 스크랩 등등 이제 다시 들쳐 볼 여유도 없는데도 버리기는 아까웠다. 끈질긴 집착인지도 모른다. 읽을거리가 넘치는 시대이다. 새로 출간되는 책들이나 읽을거리도 따라가기 힘들다. 애착이었다.
나이 들고 보니 그것도 결국 욕심이었다.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만큼 욕심의 무게가 느껴졌다. 책꽂이에 있는 ‘버리고 떠나기’ 책에 자꾸 시선이 꽂혔다. 이사라는 것이 단순히 사는 곳을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기회이고 훈련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우면 버릴 수도 있는데 이런 이유 저런 이유를 대면서 여전히 버리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책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내 안에 욕심이라는 뿌리도 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음부터 욕심에서 이사를 가고 싶어졌다. 무엇이든 영원한 내 것도 없는데…….
( 지난 가을 산책길에서 내 것이 아니라도 보고 즐기며 마음에 담을 수 있었던 까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