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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Feb 23. 2022

마음속 서랍에 정리한 이삿짐

~ 이삿짐 따라온 천사들 ~

 이사를 했다. 

손이 시리고 곱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그래도 눈 비 오지 않아 다행이라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역시 전문가들이었다. 버리고 또 버렸지만 어느 집이나 여전히 어마어마한 이삿짐 트럭을 보면 사람 사는 것이 이렇게나 복잡하고 필요한 것이 많다는 말이다. 사람은 고등동물이라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강아지는 맨 몸으로 그냥 따라나서면 되는데 사람은 무어 그리 챙겨야 할 것이 많은지…….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이사해 주느라 하루, 다음 날은 이제 다시 내 생활에 맞게 디테일하게 정리하느라 하루, 그리고도 며칠은 일할 때마다 정리를 겸한다. 정리하느라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이 남아 있었다.      

 


 책은 책꽂이에, 살림살이는 주방으로, 옷은 옷장 속으로, 가구들도 제자리를 용케도 찾아 들어갔는데 거실, 주방, 방안, 벽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이삿짐이 있었다. 정(情)이었다.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들을 다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니 그때서야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사 올 때 짐처럼 따라온 정이다.      

 


 어쩔 수 없이 주위에 이사 날짜가 알려졌다. 이사하는 날, 관리비 정산하고, 버리고 가는 물건들 수거료 계산하고 왔다 갔다 분주한 와중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려고 왔다는 이들과 어정쩡하니 인사를 나누었다.           

 


 서운하다며 이 코로나에도 힘껏 포옹하며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어준 핫팩이 이사하는 내내 정말 난로였다. 손난로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사 가서 먹으라고 준 빵, 샌드위치는 정말 이삿날 저녁 식사가 되었다. 종이뻭에 넣어 떠나려는 이삿짐 차에 실어준 샌드위치와 빵이 그날 저녁밥이 되었다. 역시 이런 상황까지 내다보고 밥을 챙겨준 아줌마들이었다.     

 


 이삿짐을 거의 다 싣고 마무리할 때 도착한 교회 자매가 아무리 사양해도 기어코 인천까지 나를 태워다 주고 차도 한 잔 못 마시고 바로 돌아갔다. 아주 따뜻하고 편안하게 쉬면서 올 수 있었다.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기사가 되어준 자매를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삿짐이 떠나고 난 후 도착한 택배가 있었다. 내가 이사 가는 것을 모르고 보낸 택배였다. 같은 동네 사는 이웃이 우체국 택배로 다시 보내 주었다. 착불로 보내달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정이라며 택배비까지 부담하며 보내 주었다. 자주 왕래하며 지낸 사이도 아닌데 심부름을 해주었다.     

 


 이삿짐 따라온 이 가슴 저린 정들! 

베푼 만큼 받은 것으로 오해할까 걱정된다. 그저 함께 한 오랜 시간이 정으로 발효된 것이다.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은근한 정이 이삿짐 따라 여기까지 왔다. 이삿짐 정리하듯 받은 정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정은 채울수록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고 가벼워지나 보다. 추울수록 정은 더 따뜻해지나 보다. 이사하면서 많이도 버리고 왔는데 마음속 서랍에 채워진 정으로 더 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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