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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Dec 29. 2021

 가진 것보다 누린 것이 많아

~   감사로 물든 한 해 ~

 세밑이다. 

이맘때가 되면 앞만 보고 걷던 걸음을 잠시나마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펼쳐져 있는 12월 탁상달력을 앞으로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본다. 11월, 10월, 9월……1월까지 거슬러 갔다가, 다시 1, 2, 3……12월까지 되돌아오며 1년을 오르내려 본다. 한 칸씩 이어져 있는 하루하루가, 한 장 한 장 모여 12장이 된 1년 삶을 한 자리에서 스캔해 본다.           

 지나고 보니 특별한 날로 메모되어 있는 날도, 공백으로 남아있는 날도 서로 다 이어져  1년의 ‘삶’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다 소중했다.      

 


 탁상 달력을 넘기자니, 1년이라는 여정에 나와 함께 한 이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들과 겹쳐서 감사, 아쉬움의 감정이 출렁거리고, 깨달음, 다짐도 가슴에 새겨진다. 지금 이 순간 여기까지 나 혼자 걸어온 것이 아니었다. 아니, 함께 해준 이들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매일 아침, 저녁 기도로 하나님을 만났다. 

허약한 내 마음을 붙잡아 일으켜 주었기에 하루하루를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 비슷한 듯 다른 하루하루, 겨자씨보다도 작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내 삶의 뿌리였기에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다. 역시 하나님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감사’이다.

감사도 행복도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그저 스스로 느껴지는 내 마음이다. 다른 해와 특별히 달라지지 않고 비슷한 한 해였다. 남보다 더 달콤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능력자로서의 자부심이나 우월감에서 오는 감사가 아니다. 복권 당첨처럼 뜻밖의 횡재를 만나서 감사한 것도 아니다. 지난 1년, 하루도 몸이나 마음이 왕창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스크를 벗지 못할 정도로 코로나 확산세까지도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불안이 남아 있음에도 감사하다.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백신을 접종하면서 조심조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 것이 어쩌면 우리 삶의 단면인지도 모른다. 그저 무사함에 감사하다.           

 


 함께 걸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에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준 이들을 챙겨보고 싶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가진 것에 비해 누린 것이 훨씬 더 많았다.  그들을 세세하게 나열할 수 없으나 굵은 줄기만이라도 되짚어본다.     



 산책길에 만난 벗들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접어두고 산책길에 오르면 시선을 따라 삶의 현장이 달라 보였다. 사계절 만나는 하늘, 나무, 꽃, 바람, 새, 그들이 모두 산책길에 만나는 벗들이었다. 그들이 삶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잠재워 주었다. 고요해진 마음은 비우면서도 충만해져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소리 없는 동력이 되곤 했다. 하늘도 산도 나무도 꽃도 바람도 말없이, 아무 댓가 없이 나와 함께 해준 이들이다. 부지런한 새들까지도…….     

 

 삶의 크고 작은 어려움,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 반복되는 무료함을 달래준 산책길 벗들이 1년 여정의 동행자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걸으며 눈이 맑아지고 마음 근육이 생기고 새힘을 얻어서 여기까지 덜 힘들게 걸어올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언제든지 내가 아쉬울 때면 눈치 보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던 이들도 있었다. 

수많은 글들이다. 세상 사는 방법이 서툴러서인지 나이 들수록 사람보다 글이 좋고 책속으로 들어간다. 이 코로나에 동네 카페까지 가지 않아도 카페가 따로 없었다. 오해할 것도 없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 사람들 마음까지 헤아릴 것도  없이 그저 읽으면 되는 책, 글이 좋은 친구였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처럼 한밤중 꼭두새벽 언제든지 나를 반겨주는 수많은 책, 글이 있어서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함께 해준 책, 브런치의 수많은 글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와 함께 해준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이나 글을 읽는 곁에서 늘 마음에 고요히 스며든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배경 음악이 흐르면 오랜 세월만큼 숙성되어 나오는 그들의 감성이 치유의 선율이 되어 주었다. 거기에 차 한 잔 곁들이면 삶의 시름을 잊고 차 한 잔의 여유에 만족할 수 있었다.     

 


 늘 함께 한 가족들과 부족한 2%를 채워준 지인들도 소중한 동반자이다. 

코로나 시대에 네 명이상 만나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시대이다. 참고 미루다 미루다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이라도 보자’고 전화해서 만난 지인들도 고맙다. 별 용건은 없지만 그저 궁금한 안부를 묻고 그간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왁자지껄 웃고 떠들었다.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끈끈한 정이 서로에게 훈풍이 되었다.        


 

 밖은 매서운 한파이다.  

오늘도 여전히 거실 깊숙이 들어와 퍼지는 밝은 햇살을 값없이 누렸다. 감사의 온기가 차올라 글이 되었다.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린 감사의 기도가 글이 되었다.  분명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데도 그저 지금, 이 순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감사 속에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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