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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Mar 20. 2022

그리움의 날 아들의 생일

~  진정 함께 할 수 있는 그리움의 힘   ~

 3월은 우리 가정 큰 행사의 달이다. 

10여 년 전 3월 마지막 날이었다. 고3이 된 큰아들 생일이었다. 3월 달력 끄트머리에 붉은색 동그라미가 쳐진 그해 생일은 온 가족이 유난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생일은 구실이고 긴장과 불안을 품고 있는 수험생의 시름을 달래주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날 아침 식탁에서 최대한 일찍 귀가하기로 온 가족이 뜻을 모았다. 출근길을 재촉하면서도 내 머릿속은 온통 아들 생일잔치 궁리였다. ‘외식으로 할까 그냥 집에서 오붓하게 삼겹살을 구울까…….’ 수험 생활에 지친 아들,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고픈 엄마의 마음이었다.      

 


 출근을 해서 첫째 시간 수업 중이었다. 갑자기 교실 인터폰이 울렸다. 전체 방송도 아니고 수업 도중에 인터폰이 울리는 것은 피치 못할 급한 사정이라는 신호이다. 왜 이런 불안한 예측은 잘 들어맞을까. 입원 중이시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배려와 걱정 섞인 교감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갑자기 세상이 멈춘 듯 정적이 흐르고 가슴을 두드리는 방망이질 소리만 점점 커졌다. 어머님이 지병으로 입원 중이셨지만 호전되고 있었던 터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먹먹해진 가슴으로 정신없이 가방을 챙겼다. 운동장을 걸어 나오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장손인 고3 아들이 떠올랐다. 당장 아들 학교로 가서 함께 시골로 가야 할지, 어른들만 먼저 가야 할지 잠시 우왕좌왕했다.      

 


 그때 갈등의 찰나를 비집고 들어오는 기억이 있었다. 

첫 손자인 우리 아들이 태어나던 날 가게 문까지 닫고 단숨에 달려오셨던 시어머니가 눈앞에 선했다. 첫 손자를 얻은 기쁨에 날개 없이도 날아온 듯했다. 방송국에 가서 광고라도 내고 싶다며 어깨춤을 들썩이던 어머님의 모습이 내 발걸음을 아들 학교로 돌리게 했다. 아들을 앞세우고 시골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아들도 할머니 장례식으로 인한 며칠간 결석을 당연지사로 각오하고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수험생이라고 불안해하거나 안달하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아들 역시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놓으며 슬픔을 달랬다. 직장 생활하는 엄마를 대신해 사실 할머니 손길에 자란 아들이었다. 밥그릇을 들고 따라다니며 밥을 먹여주고, 감기라도 들면 엄마 대신 병원도 데려가고, 열을 내리느라 밤새워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주었고, 배탈이라도 나면 죽을 끓여서라도 손자가 먹어야 당신도 식사를 하셨다니…….            

 

 할머니 손길이 그리워서인지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어떤 방학 때는 기차만 태워주면 혼자서도 시골 할머니 댁을 다녀오곤 했다. 일주일만 다녀와도 통통해진 볼살과 짱짱해진 근육이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다. 항상 자신을 최우선으로 챙겨주던 할머니 손길을 떠올리며 아들도 할머니 장례식 참석을 최우선 순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 아들 생일잔치는 장례식장에 둘러앉아 나누는 기억의 만찬이었다. 

몸은 멀리 있어도 늘 우리 가족 곁에는 시어머님 손길이 함께 있었다. 떨어질 사이 없이 보내주던 맛있는 김치, 철마다 보내주던 향토 음식들, 된장, 고추장, 간장뿐만 아니라 각종 마른반찬들로 식탁은 늘 시어머님 손맛이었다.       

생일 케이크 대신 멈춰버린 시어머니 시간을 되돌려 놓은 추억들을 곱씹는 생일잔치였다. 슬픔과 기쁨이 만나 슬픔도 기쁨도 배가 되었다.      

 


 온 가족에게 쌓인 시어머니의 시간에 비하면 장례식 3일은 금방이었다.  백세 시대인 요즘, 시어머니는 일흔다섯이라는 아쉬움 속에 수많은 기억을 남긴 채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매년 아들 생일과 시어머님 추도일이 같은 날이 되었다. 남은 자와 떠난 자의 삶이 중첩되고 연결되는 날이다. 애지중지하던 손자를 아주 떠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사소하고 당연한 줄 알았던 시어머니 손길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삶의 곳곳에 서려 있는 시어머니 손길이 문득문득 온 가족에게 가슴 찡한 그리움이 되었다. 겹쳐진 생일과 추도일이 마지못한 부담이 아니라 기꺼이 서로 함께 즐기고 기릴 수 있는 것도 사랑을 품은 시어머니의 손길이 남긴 그리움이었다.           

 


 결국 시공을 초월해서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 봄마다 그리움을 달래주는 산수유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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