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떡을 받았다.
어떤 자매님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겼다며 교인들에게 떡을 돌렸다. 자랑이 될까 봐 구체적으로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떡을 돌린다고 했다. 스트리폼 접시에 팥시루떡을 두 개씩 넣어서 비닐 랩을 씌워서 한 사람당 한 팩씩 배부를 했다.
떡 주인은 마음을 받아줘서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아주 밝게 웃으며 떡을 나눠주고 있었다. 물론 받는 사람들도 모두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하지만 받고 집에 가기 바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떡을 돌린 사람의 마음을 다시 찬찬히 떠올리며 걸었다.
떡을 돌린 진심을 되새겨 보았다. 떡을 돌린 사람은 큰 마음먹고 목돈 들여서 준비했을 텐데 받는 사람들은 ‘웬 떡이냐?’하며 좋아하긴 했어도 모두가 받으니 어쩌면 당연시하며 받았는지 모른다.
우리 식구는 세 사람이 받아서 세 팩이나 생겼다. 딸은 떡을 받긴 했지만 아직 젊어서인지 떡을 잘 먹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떡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많이 먹지 못 한다. 한 번에 한쪽 정도면 족하다. 떡을 돌린 사람의 정성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 스쳤다.
종종 받은 떡이 남으면 아깝다고 냉동실에 넣었다가 얼어 버리면 떡을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잊어버리곤 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생각되었다. 정성이 얼어 버릴 것 같았다. 잘못하면 처리 곤란한 떡이 되어 버린다.
떡을 준 사람의 진심이 식어버리고 얼어버려서 맛을 잃어버리기 전에 고마움을 더 널리 나누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다 보니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 경비 아저씨들이 눈에 뜨인다.
재활용품 수합처에서 일하시던 아저씨가 바위에 걸터앉아서 잠시 쉬고 계신 듯했다. 지쳐 보이신다. 어차피 당장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떡은 한 팩만 있으면 된다. 아저씨에게 교회에서 받은 떡인데 너무 많아서 드린다며 나눠 드시라고 두 팩을 드렸다.
경비 아저씨는 뜻밖이라 놀라며 “아이코, 고맙습니다.”라며 금방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내가 교회에서 처음 받을 때보다 아저씨가 더 고마워하셨다. 아저씨의 웃음 띤 얼굴에 나도 금방 마음이 가벼워졌다.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가 보다.
괜히 욕심부려서 냉동실에서 얼리고 마음 바뀌면 버릴 수도 있을 뻔했는데 한 번에 나눠서 먹게 되니 훨씬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사랑도 유통기한이 있나 보다.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 후에 디저트로 먹은 떡, 역시나 딸은 권해도 먹지 않았고 우리 부부가 한 쪽씩 먹으니 딱 좋았다.
냉동실에 들어갔으면 욕심으로 변할 뻔했는데 나눠주고 나니 욕심을 저장하지 않아서 홀가분했다. 떡을 나눠주던 떡 주인의 정성도 고스란히 잘 전달되어서 기쁘다. 경비 아저씨의 고마워하던 마음까지 떡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다. 떡이 내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왠지, 아직 홀가분한 즐거움이 온 마음을 맴돌고 있다.
( 집 밖에 내놓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꽃들과 주인들 마음을 엿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