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위에 뿌려지는 고춧가루가 가슴에 온기로 흩뿌려져 내린다. 순간, 밋밋한 맛이 칼칼한 맛으로 변하는 것은 그저 고춧가루만의 맛이 아니다. 지난 추석 시골에서 고춧가루를 보낸 지인의 정이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붉은색 고운 가루가 음식 속으로 투하되면서 지인의 정이 고춧가루 색깔처럼 가슴으로 퍼진다.
본래 농사를 짓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텃밭에 채소 조금 키우는 정도였다. 그런데 올해 추석에는 고추농사 지었다고 햇고추 가루 맛보라고 보내 주었다. 정말 의외였다. 그것도 손질해서 방앗간에 가서 빻아서 보관하기 편리하도록 아예 적당량씩 비닐 지퍼백에 나누어서 보내 주었다. 세심한 배려였다. 택배 받자 두 번 손질할 것도 없이 고춧가루를 바로 냉동실에 들여놓았다.
한 봉지씩 꺼내서 먹을 때마다 곱고 섬세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음식에 고춧가루를 쓸 때마다 ‘참 고맙네’라고 읊조린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가족들과 고마움을 되새김질한다.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고추 농사짓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보통 고생이 아니라고 들었다. 더구나 농사 지을 줄도 모르면서 뜨거운 땡볕에 물 주고 약 뿌리고 벌레 접근 막고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짐작해 본다. 고추를 따서 말리고 닦고 방앗간에 가져가서 가루를 만들어서 보내 준 과정이 파노라마가 되어 쭉 지나간다.
아무 도움도 준 것도 없고 농사를 짓는 줄도 몰랐기에 고춧가루 선물을 받고 고맙기도 하지만 가만 앉아서 받을 염치가 없었다. 고생이 훤히 보이는데 그냥 먹을 수 없어서 뭘 조금 사 보냈지만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음식을 하면서 고춧가루를 쓸 때마다 고마운 정이 이토록 새록새록 되살아 날 줄이야. 정이 고조되어 더 맛을 내고 식탁에까지 인정이 차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