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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Dec 15. 2022

밥이냐 약이냐

~  잠이 보약이고 밥이 힘 ~

 94세 친정엄마는 치매환자이다.

엄마의 기억과 생각이 모든 문제의 정답이다. 아무리 진정으로 애가 타도록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다. 그중에 가장 큰 문제가 입원과 약이다. 입원을 절대 거부한다. 자신은 거동이 불편할 뿐, 요양원 신세를 질 정도는 아니라고 믿는다. 스스로 마음은 청춘이다.      

 


 엄마는 등급도 없다.

등급 받는 것을 강력히 거부해 왔기 때문이다. 요양원 입원이 아니더라도 혼자 계시니 가사도우미 보조라도 받게 하려고 등급을 받게 하고 싶지만 말도 못 꺼낸다. 등급도 요양원 입원도 치매치료 약도 모두 씨도 안 먹힌다.           


 

 환청 환시를 사실로 믿는다.

치매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증상으로 환청 환시가 나타난다고 한다.

늘 어떤 자식이 자기를 해롭게 한다기도 한다. 밥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간다. 화장지에도 고춧가루를 뿌려서 화장지를 쓰면 피부가 쓰리다. 어떤 자식은 강제로 약을 먹이려 한다. 몰래 음료수나 밥에 약을 섞는다. 엄마를 괴롭히는 환시에 시달리면서도 어떤 증명이나 권유도 통하지 않는다.     



 강제입원을 시켰지만 이틀 만에 퇴원이 되었다.

엄마의 환시에 시달리다 못해 가까이 사는 자식들이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강제 입원시켰지만 실패로 끝났다. 엄마는 입원을 거부하며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내보내 달라고 기도만 했다. 병원에서도 엄마의 논리적인 말과 식음을 전폐한 시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퇴원을 허락했다. 엄마는 엄마의 승리에 뿌듯해한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거부한다.

의사 진단에 의하면 치매가 진행되어서 생긴 환시라고 치매 약을 처방했지만 엄마는 약을 거부한다. 퇴원 후 몰래 약을 먹여 보기도 하고 강요도 했지만 엄마는 기가 막히게 잘 알아차렸다. 음료수 맛이 다르다, 밥 맛이 다르다, 자고 나니 몸이 쳐진다 등등의 느낌으로 엄마는 약을 알아차렸다. 그런 느낌이 온 집에서는 마음 놓고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최대한 정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일주일 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왔다. 엄마가 치매라고 하지만 엄마 상태를 보면서 나는 엄마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올 때부터 진짜 오고 싶으면 오고 바람 쐬여 준다느니 하는 핑계로 몰래 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로 엄마 의사를 확인하고 모셔왔다.     



 밥이냐, 약이냐를 선택해야 했다.

동생이 엄마 옷 짐에 약을 싸서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약을 찾지 않았다. 이제 90이 넘은 엄마이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엄마 의사를 무시하고 몰래 약을 쓰기에는 치매치료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일거수일투족 부축을 해야 할 정도이지만 기억이나 주장이 너무 확실해서 엄마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밥을 선택하기로 했다.

약을 먹이려다 밥까지 못 먹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절 약을 타지 않기로 마음먹으니 나도 엄마를 속이려는 잔꾀 부릴 일이 없었다. 과일을 갈아서 줄 때도 엄마 보는 앞에서 갈아서 주고 엄마가 먹지 않을 때는 그 자리에서 내가 먹었다. 항상 밥을 엄마와 함께 먹으며 엄마 반찬도 거들어 주면서 남으면 내가 먹었다.      

 


 잠을 선택했다.

잠든 사이에 약이라도 탈까 봐 엄마는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엄마와 함께 자리에 눕고 함께 일어나야 했다. 책도 봐야 하고 브런치도 궁금했지만 삶이 우선이었다. 엄마가 잠든 사이라도 일어나서 뭘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도중에 잠이 깨면 옆에 내가 있는지 손으로 더듬어보고 없으면 의심을 하는 눈치였다. 엄마와 보조를 맞추느라 너무 일찍 누워서 잠이 오지 않으면 이불을 덮어쓰고 겨우 브런치를 읽고 라이킷을 누를 정도였다. 아침에 잠이 깨면 엄마는 옆에 내가 누워있어서 안심을 했다.          

 


 잠이 보약이고 밥이 힘이었다.

엄마는 함께 있는 3주간 동안 부러울 정도로 잠을 잘 잤다. 마음 놓고 식사를 하며 좋아했다. 병원에서 혈액검사로 피를 뽑았던 악몽으로 몸만 안 좋으면 누군가 몰래 피를 뽑아 갔기 때문이라며 속상해했지만 그래도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서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시시때때로 환시를 보며 혼자 대화도 하고 싸우는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엄마가 마음 놓고 식사하고 잠을 잘 자서 좋다는 말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신뢰가 수면제였다. 이제 완치가 어려운 상태이니 차라리 약을 포기하고 밥을 선택하길 잘했다.  약은 어디까지나 보조이지만 밥은 필수이니까.     

 


 그래도 고향 가서 세상을 뜨고 싶어 했다.

잘 먹고 잘 자면서도 기력이 하루하루 쇠해지고 환청 환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부축해서라도 걸을 수 있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때에 고향에 가 있고 싶다고 했다. 엄마를 돌보던 막내 동생의 아들, 조카 결혼식을 앞두고 있어서 시골 가는 것을 말려 보았지만 허사였다. 한 번 마음을 먹으니 더 이상 말릴 수도 없고 순간적이지만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며 나도 불안했다. 물도 못 넘어간다더니 다시 시골로 간다는 말에 죽도 먹고 갈 채비를 순순히 다 했다.      



  눈보라 속 고속도로를 가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인천에서 안동까지 내려가면서 곳곳에서 고속도로는 눈보라였다. 그래도 엄마는 고향에 가 있어야 한다는 일념뿐인 듯했다. 엄마가 계속 머물던 막내 동생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까마귀도 제집에 와서 세상을 뜬다는데 큰일을 당해도 고향에 와서 당해야 편하다고 중얼거렸다.      

 


 삶이란 끝까지 진정성과 신뢰는 통할 수가 있었다.

치매로 엄마가 뒤에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해도 내 마음이 편한 것은 진정성의 힘이 아닐까 싶다. 무슨 소리? 억지로라도 약을 먹여 치료를 시켜야 현명한 방법이라고 힐난을 해도 할 수 없다. 나는 단순 무식하게 신뢰를 택했다. 밥과 잠을 우선으로 선택했다. 의사가 아니어서 치매를 치료해주지 못했지만 신뢰를 줄 수는 있었다. 몰래 약을 섞지 않았고 약을 강요하지 않았기에 엄마가 마음 놓고 밥을 먹고 잠을 자게 해 줄 수는 있었다. 나머지는 하늘에 맡겼다.  


신뢰도 눈처럼 쌓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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