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속에서도 봄날처럼 온기가 감돌던 지난 12월 숙모가 세상을 떠났다. 여든아홉이라는 한평생을 마감하던 날, 숙모는 쉽게 눈을 감지 못 하셨다.
독신남으로 지내면서 정년퇴직 후 예순이 넘도록 줄곧 엄마하고 둘이서 살아온 사촌이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폐암 말기인 엄마를 직접 간병해 온 사촌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밥을 차렸는데 엄마가 기침이 없으셨다. 방문을 열어보니 아직 눈을 감고 있다. 주무시나 보다 생각했는데 점심때가 되어도 나오지 않으셨다. 깨워봐도 고개를 내젓기만 했다. 밥상을 차려놓고 “ 엄마, 다녀올게. 일어나면 밥 먹어.”하고 외출했다가 돌아와 봐도 기침이 없으셨다. 불러봐도 눈을 한 번 떠보고는 식음을 전폐하셨다. 눈물만 주르르 흘리셨다. 사촌은 억지로 미음을 입에 떠 넣었지만 거부하셨다. 사촌은 밤새 엄마를 꼭 안고 잤다.
다음 날도 반복이었다.
가까이 사는 외손녀가 와서 눈을 감고 있는 외할머니의 손도 잡아주고 찬송도 불러주며 힘을 내라고 다독거려도 눈물만 흘렸다.
막내아들이 와서 엄마를 부르자 잠시 눈을 뜨고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거렸다.
막내아들이 짐작으로 응답을 했다. “엄마, 걱정 마. 큰형을 아버지처럼 내가 잘 모시고 보살필게…….” 그제야 숙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안도의 한 숨을 쉬셨다.
3일 동안 사촌은 엄마를 꼭 안고 밤을 지새웠다.
날이 밝자 119를 불렀다. 대형병원 응급실로 가서 중환자실 입원을 위해 검사를 하니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왔다. 입원을 못 하고 가족의 선택과 관계없이 정부에서 정한 거점 병원으로 옮겨졌다. 폐암 말기에 코로나까지 겹쳤으니 면회는 무조건 금지였다.
밖에서 애를 태우던 사촌은 엄마에게 손 편지를 썼다.
직접 볼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지만 간호사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89년 엄마의 삶은 위대했고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삭바느질로 5남매 모두 잘 키워서 독립시켰으니 엄마는 훌륭한 삶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간호사에게서 엄마에게 직접 읽어 드렸다는 회신이 왔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렇게 별 고통 없이 식음을 전폐한지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봄날처럼 온기가 세상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사촌은 숙모를 매장하고 돌아왔다.
사촌은 엄마를 땅에 묻은 것이 아니라 가슴에 묻었다.
외출했다가 불 꺼진 집에 문을 열고 들어오면 집안 구석구석 엄마의 흔적에 이 방 저 방 불을 다 켜 본단다. 온 집에 불을 다 키고 TV까지 켜놓고서야 잠을 이룬다는 사촌이다. 외출을 위해 집을 나서려면 “ 야, 거울 잘 보고 단정하게 하고 나가라.”하시던 숙모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사촌은 괜히 자꾸 거울 앞을 서성거린단다. “오늘은 두부조림 해서 먹자, 잡채 해서 먹자.”해서 막상 해놓으면 말기암 환자인 숙모는 정작 드시지 않고 그렇게 해서라도 잘 먹고 다니라고 사촌에게 자꾸 권하셨단다. 혼자서 밥상 앞에 앉으면 엄마가 “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하던 음성이 귓전을 맴돌아 목이 메이면서도 자꾸 그것에 수저가 간단다.
사촌이 남자답지 않게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사촌이 행복해 보였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가슴 깊이, 삶의 곳곳에 살아있는 부모의 사랑을 평생 추억하며 살 것만 같았다.
사랑은 코로나도 초월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줄도 모르고 엄마를 3일 동안이나 꼭 안고 자고 마지막까지 함께 했지만 사촌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 잠시 방문해서 손 잡아 주고 찬송도 불러준 주부 외손녀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외손녀는 외삼촌인 사촌이 코로나 걸리지 않고 자기가 걸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했다. 장남인 사촌이 코로나 걸렸으면 장례에 차질을 빚었을 것을 염려했다. 엄마를 애지중지하는 사촌의 효심과 숙모의 사랑에 코로나도 얼씬 할 수 없었나 보다.
사촌은 노인들을 볼 때마다 엄마가 겹쳐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안부도 물어보고 건강도 당부한다고 했다.
퇴직 후 나이 들면서 여기저기 장례식에 자주 가는 편이다.
100세 시대여서 그런지 울음소리 사라진 장례식장을 자주 접한다.
사촌의 효심이 한 편의 전래동화처럼 들려서 가슴이 먹먹했다.
죽음 앞에서도 홀로 된 큰 아들을 동생에게라도 부탁하고 싶었던 엄마를 사무치도록 그리워하는 사촌의 눈물이 겨우내 얼었던 땅을 녹이듯 나의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숙모와 사촌이 협연하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이별 연주곡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