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신옥 Apr 17. 2023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 심은 대로 거두면 감사 ~

재래시장을 갔다.

비가 올 듯 찌뿌둥하고 냉기가 도는 날씨다. 날씨 따라 저녁 메뉴로 동태찌개를 정했다. 생선가게 아저씨도 이런 날씨에는 얼큰한 동태가 최고라고 입 전을 아끼지 않았다. 동태 한 마리 사고 손질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확성기로 외치는 광고에 시장이 들썩이고 시장온 아줌마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00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00 고추장에서 광고차 나온 영업사원들입니다. 이번에 00 고추장에서 새로 출시한 맛 좋고 영양 좋은 ‘호박고추장’을 지금부터 5분간만 선착순으로 한 통씩 무료로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단 5분 안에 오시는 분에 한해서만 무료로 나눠드리려고 합니다.”라고 외쳐대는 것이 아닌가. 소리가 나는 곳은 다행히 내가 있던 생선가게에 인접한 도로였다.


          


 ‘호박고추장?’ ‘한 통씩이나 무료로?’ 귀가 솔깃했다.

다른 시장 볼 때가 아니었다. 얼른 동태를 챙겨서 아줌마 근성이 발동되어 뛰다시피 광고용 봉고차 앞으로 갔다. 모이고 보니 역시 모두 생활에 달인이 된 아줌마 아저씨들만이 몰려왔다. 헉헉거리면서도 서로 마주 보고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면 바로 호박고추장을 한 통씩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영업사원이라는 분들이 우리에게 일단 줄을 서고 광고용 전단지를 한 장씩 받으라고 했다.           


 ‘그래, 전단지정도는 받아 줄 수 있지.’라며 호박고추장 받을 욕심에 전단지를 받았다.

행여 나중에라도 구입할 수도 있으니 잘 접어서 장바구니에 넣었다. 영업사원은 도로변이라 일단 봉고차를 빼야 한다며 한 사람이 차를 이동하는 동안 고추장 박스를 들고 앞장 서서 가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렇지, 도로변이니까 차를 빼야 되겠지.’ 이해를 하며 영업사원을 따라간다기보다 고추장 박스를 뒤따라 갔다. 차도가 아닌 인도에 공간이 있는데도 우리를 계속 따라오라고 한다. 이미 머릿속에는 호박고추장 한 통이 자리를 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고추장은 받고 가야겠다고 별것도 아닌 목표의식이 생겼다.           

 


“아니 어딜 가는 거야?” 따라가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딘가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속으로 ‘뭔가 이상한데? 그냥 돌아갈까?’ 쭈뼛거리며 망설이는데 사원은 비가 올 것을 대비했다고 양해를 구한다. 미리 설치해 둔 비닐포장마차 속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TV 광고 비용대신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와서 광고를 하고 고추장을 한 통씩 나눠드려서 입소문을 내게 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그렇지, 그렇지” 우리들은 어느새 영업사원 말마다 추임새까지 넣어 주고 있었다.

호박고추장을 받기 위한 일체감으로 영업사원이라는 분의 찐 팬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따라오신 고객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많다면서 일단 검은 비닐봉지를 한 장씩 먼저 받게 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팔기 위함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각종 건강에 대한 정보를 일사천리로 연설을 늘어놓았다.   대부분 나이 지긋해서 건강과 성인병 정보에 빠져들고 있었다      



  ‘호박고추장’만을 기대해서 따라왔기에 다른 광고에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가버리거나 집중을 하지 않을까 봐 연설 중간중간에 비닐봉지에 밥주걱도 하나씩 배부하고 또 지루해질 만하니 혼합 12곡 50g을 나눠주었다. 또 대답을 큰소리로 잘 한 사람에게는 증정품을 하나씩 더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서로 먼저 대답해서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서로 큰소리로 대답하려고 한눈 팔사이도 없었다. 모두 선생님 앞에 칭찬 받으려는 어린이들 같아서 우습기도 했다. 도대체 호박고추장은 언제 준다는 말인지 뭔가 의심이 들면서도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분위기 조성에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보다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고 호박고추장은 최후의 담보물이었다. 이미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기다려 호박고추장을 받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고추장 광고를 위한 것도 아니고 팔려는 주인공 물품은 홍삼이었다. 00 고추장 식품에서 나온 영업사원인지도 불분명했다. 홍삼이 등장하고 또 선심을 쓰듯 증정품이 등장하는 것까지 보고 나는 결국 호박고추장을 포기했다. 집으로 가는 나를 보고 여태까지 기다려서 호박고추장도 못 받고 간다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허비한 시간이 아까웠다.           

 

 호박고추장은 미끼였다.

나오면서 보니 정작 박스에 담긴 호박고추장은 100g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얄퍅했다. 한 통이라기보다는 한 숟가락에 불과해 보였다. 호박고추장은 주부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미끼였다. 집에 와서 혼합 12곡 증정품을 보니 농협에서 준 것이라고 소개했는데 온통 수입곡물 투성이었다.           


 내 욕심이 호박고추장 미끼에 낚였다.

미끼상품으로 속였다고 원망하기 이전에 공짜라는 말에 솔깃했던 자신이 참 허탈했다. 그 호박고추장이 뭐 그리 대수라고, 아직도 그저 공짜라면 일단 솔깃하고 말다니 참 한심했다. 미끼에 낚여 잡혀왔을지도 모를 동태처럼……. 죽을 때까지 욕심을 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좌절감까지 들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받아온 증정품들도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실상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저녁 식탁에서 얼큰하게 속을 풀어준 동태도 말해 주었다.

작은 미끼가 욕심의 씨앗이고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라고…….      



삶은 그저 심은 대로 거두고, 땀 흘린 만큼 거둘 수만 있어도 감사한 일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