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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신옥 May 02. 2023

저렇게라도 할 수 있어서

~ 다행이기만 해도 감사 ~

모처럼 산책길을 걷는다.

올해는 봄비에 꽃들이 빨리 저버려서 신록의 계절을 빨리 맞이했다. 화려한 봄꽃들이 장식했던 길이 온통 신록이다.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나무와 마주한다.      



 나이를 속으로 먹기에 겉은 어느 나무나 푸르다.

나이를 먹는 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속 마음과 달리 몸이 시들어가는 나와 비교되어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늘 푸른 이 나무 저 나무를 자꾸 쳐다본다. 부럽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아름드리 큰 나무 몸에는 군데군데 껍질이 벗겨지고 파이고 상처 투성이다. 비바람 상처에도 하늘 향해 뻗어가며  검은 줄기 줄기에 연둣빛 이파리들이 번져가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푸르름으로 그늘을 드리워가는 여전한 일상이 부럽다.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의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서 걸어가신다.

예전에는 불쌍해 보였는데 친정엄마가 못 걷고 나서야 저렇게라도 혼자 걸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인지……. 차마 지나쳐 앞서 가지 못 하고 할머니 뒤를 가만가만 따라 걷는다.     



 딸인지 며느리인지 휠체어를 밀어주며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며 걷는다.

예전에는 힘들어 보였는데 친정엄마가 외출을 하지 못하고서야 저렇게라도 외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저렇게라도 외출해서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햇살도 바람도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화가 된다.     



 할머니 한 분이 쉬어가려고 벤치에 앉아 있다.

예전에는 외롭게 보였다. 친정엄마가 요양원에 들어가면서야 저렇게라도 쉬어가면서라도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알았다. 혼자라고 다 외로운 것이 아니다. 요양원 신세 지지 않고 집에서 지낼 수 있어서 저렇게라도 꽃도 바람도 햇살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집에서 지낼 수만 있어도 다행이다.     



 결코 효녀는 아니지만 친정엄마가 요양원에서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나서야 매일 저렇게 먹고 자고 걷고 집에서 지낼 수만 있어도 얼마나 다행인 줄을 알았다.            



 평생 해왔기에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나 다행인 줄을 그것을 못 하게 되고서야 깨닫는다. 평범한 일상이 절실해진다. 저렇게라도 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줄 미처 몰랐다.           



 그러고 보면 매일매일 반복할 수 있는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저렇게라도 할 수 있음에…….           



 나무가 변함없이 푸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바람도 비도 햇살도 매일 품어 줄 수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무도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서도 햇살 받으며 늘 푸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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