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너무 잘하지도 말고 너무 못하지도 말고 그저 중간만 해라 그래야 편하다.”라는 말씀이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나이 들수록 무릎을 치게 된 말이다.
‘무엇이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중간만 해라’라는 말!
어린 초등학생으로서는 도저히 수긍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너무 어려서인지 그저 그 말씀만 하시고 부연 설명을 생략하시는 눈치였다. 아마 나이가 들어야 그 의미심장함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간’이라니?
성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성공’을 꿈꾸던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1등을 해야 좋고 최고가 되어야 성공을 할 수 있지 왜 중간을 최선이라고 하실까! 시험을 치고 나면 선생님은 100점을 맞아도 치켜세워주지 않았다. 1등이라고 친구들 앞에 세워서 박수 세례를 받게 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100점을 받아도 칭찬이 없어서 서운하기도 했다. 노총각 선생님으로 연로하신 어머님과 둘이서 살고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그 지론이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 말은 기억의 저편 속으로 묻혀버렸다. 아주 사라져 버린 줄 알았다.
중고등, 대학시절은 좋은 성적을 받을수록 성취감도 맛보고 부러움을 사고 공부하는 보람이 있었다.
꿈꾸던 교사가 되었다.
담임이 되어서 열정을 가지고 가르친다면서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독려를 했다. 유난히 시험도 많이 치고 학급별로 통계를 내고 비교를 하던 시대, 거기다 무슨 경시대회니 뭐니 행사까지 하던 시대 상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1등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열심히 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그러다 시험이나 행사에서 결과가 다른 학급보다 성적이 우수할 때 우쭐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불편했다. 왠지 남에게 선의의 피해를 주는 식이 되었다. 마치 남보다 잘하려고 과욕을 부린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다. 동기유발이 되어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아이들은 좋아하지만 내 마음은 꼭 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학급에 비해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괜히 능력 부족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아서 의기소침했다.
너무 잘해도 너무 못 해도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때 문득 까맣게 잊고 있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 말씀이 떠 올랐다. 녹이 쓸 정도로 오래된 기억 조각들의 퍼즐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어린 우리들에게 사실을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 놓여서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스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무엇이든 중간만 하라던 선생님의 수십 년 전 곤혹스러운 표정까지도 다시 눈에 선했다. 그 자리에 가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제 모든 현장에서 물러나고도 더 나이가 들어보니 편한 것이 무엇인지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마음 편한 것’이 최고였다. 결코 무기력증도 아니고 삶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 편한 일상이면 되는 것이었다. 별 것 아닌 줄 알았던 ‘마음 편한 것’이 가장 풍성한 삶이었다.
자주 음미해 보는 글 중에 오늘따라 더 좋아지는 글이다.
들꽃처럼 소박한 인생
~ 작가미상 ~
부담스러운 옷보다
편안한 옷이 좋아지고, 멋진 신발보다 걷기 편한 신발이 좋아지고, 불편한 사람보다 마음 편한 사람이 더 좋아진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너무 과해 화려한 삶보다, 은은한 향기를 지닌 들꽃처럼 소박한 인생이 더 좋아진다. 욕심 없는 가벼운 삶이 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