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이다. 오랜만에 와서 금방 가버리던 첫눈을 예상했는데 오늘 첫눈은 달랐다. 낭만의 첫눈이 아니다. 곳곳이 폭설 수준이란다.
온라인으로 어묵을 주문했다.
사진을 보니 군침이 돌고 푸짐해 보였다.
꼬치에 끼어진 어묵과 뜨끈한(내 짐작) 국물이 먹음직스러웠다. 톡딜로 값까지 할인했다. 언제 도착하는지 몇 번이고 배송정보를 확인하며 기다렸다. 첫눈까지 왔으니 어묵탕이 딱 어울린다 기대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대문 앞에 와 있는 아이스박스를 들여왔다. 어묵을 개봉했다. ‘아니, 이럴 수가’ 소개된 사진과 영 딴판이었다. 꼬치에 끼어지지도 않았고 반지처럼 작은 어묵도 있고 길어야 손가락 정도크기였다. ‘내가 너무 편하려고 생각했나?’ 꼬치는 알아서 할 일이고 크기는 광고사진이라 실제보다 확대했어나 보다.
역시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고 중얼거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생각나는 책이 있었다. 류시화 작가님 수필집이다.
뭔가 예상 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생각나는 책이다. 자주 그리워지는 책이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라고……. 책 제목인데 내 생각처럼 중얼거리고 ‘맞아’라고 맞장구를 치고 나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당연시하려고 마음을 다독이게 된다. 끓어오르려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시끄러워지려던 마음이 고요해진다.
책을 찾아 밑줄 그은 부분이라도 다시 읽어보았다.
오래된 친구 만나듯이 책 속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이 한 말을 가감하고 꾸미지 않고 그대로 옮겨본다.
동화와 현실 중간에서 살아가는 듯한 외국인 친구가 서울을 여행하면서 말했다.
“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정말 좋은 일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니까.”
말뿐만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친구였다.
기다리는 버스가 늦게 오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거리에 더 오래 서 있게 돼 기쁘다.”
제주에서 폭설로 발이 묶이자 ‘신이 준 선물’이라며 좋아했다.
소설『폴리애나』의 주인공 폴리애나 소녀는 열한 살에 고아가 된 불행한 삶 속에서도 매 순간 ‘다행한 일 찾기’를 한다. 이모 집에 얹혀살면서도 매일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방에 거울이 없어도 주근깨 난 얼굴을 안 봐도 되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기차역에 마중 나와 주지 않은 이모에 대해서는 이모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일이 좀 더 연장되어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이 있는 데서 자신도 모르게 방귀를 뀌면 ‘똥을 싸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야.’라고 생각했다.
“다행이야”는 불우한 삶을 견디는 만트라(마음의 도구)였다.
폴리애나는 이것을 ‘기쁨 찾기 놀이’라고 했다.
기쁨 찾기 놀이는 억지로 지어낸 자기 위안이 아니라 삶을 전체적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고난을 지탱하는 것은 기쁜 일을 발견하는 마음이다.
노래 부를 일이 없다고 많은 이들이 말한다.
하지만 시인 마야 안젤루가 말했듯이 새는 해답을 가지고 있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노래한다.
‘사람들은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죽으면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긍정적인 생각은 좌뇌에서 간단히 처리되는 반면 부정적인 생각은 우뇌에서 훨씬 많은 분석과 사고과정을 거친다고 뇌신경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감정보다 불쾌한 감정과 사건을 묘사할 때 더 논리적이고 강한 말들을 사용한다. 그렇게 발달한 우뇌는 부정적인 것을 발견하는 일이 습관이 된다. 그것이 인간 뇌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긍정을 택할 것인지 부정을 택할 것인지…….
인생은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다.
내가 생각한 세상이 아니며, 내가 생각한 사랑이 아니다. 자신이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인생이 주는 선물 ‘다른 인생’이라고 했다.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첫눈.‘첫’이라는 이미지답지 않게 많이 쌓였다. 어제와 다른 딴 세상을 선물로 받았다 생각하니 고요한 환희가 느껴진다. 세상을 하얗게 덮어준 이불 같은 첫눈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묵탕을 하려고 샀던 어묵은 저녁에 어묵 볶음을 했다. 작은 어묵이라 실망했지만 다시 손질하지 않고 볶음 하기 편리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모든 사람 마음대로 된다면 더 이상한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할지라도 ‘기쁨 찾기 놀이’하듯 살면 세상사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