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치고 싶지 않은 병 ~
퇴직 후, 남은 삶에서 꼭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체력이 약해지고 정신이 흐려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들을 해둬야 할 것 같았다.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글을 쓰는 일이었다. 아니 글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삶을 돌아볼 때 왜 원망, 불평, 후회가 없겠는가! 하지만 그런 것을 회상하며 삶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걸어와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 스스로 걸어온 것이 아니었다. 어렵고 힘든 삶의 순간마다 나를 붙들어주고 일으켜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내가 만난 천사”라고 읊조릴 때가 많았다. 내 삶이 끝나기 전에 내 마음속 천사들을 세상 밖으로 날려 보내고 싶었다. 활자라는 날개를 달지 않고서는 그들을 날려 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천사들로부터 받은 삶의 자양분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밑거름이 되게 하고 싶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쉼을 주고 싶었다. 우울해진 사람들에게 미소라도 한 번 짓게 하고 싶었다.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고 밝아지길 바라면서…….
나타내고 채우려는 마음이 아니었다. 천사들을 날려 보내며 비우는 마음으로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다.
이런 나의 진심이 통해서인지 브런치 작가로 승인을 받았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서 한가해서 옛날 추억이나 떠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물에 새겨 흘려보낸 고마운 은혜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지나간 은혜들을 되새김질해서 글을 쓰다 보니 가장 먼저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원망, 불평으로 부글거리다가도 고마웠던 일들을 쓰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아졌다. 굳었던 마음을 풀어주었다. 차가워진 마음이 글의 온기로 따뜻해졌다. 글을 쓰고 나면 잔잔한 행복감에 마음이 넉넉해지곤 했다.
문제는 글 쓰는 시간 확보였다. 퇴직을 했다고 직장 나가던 시간이 통째로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퇴직하자마자 바로 자동으로 복직된 것이 주부였다. 하려고 하면 끝이 없는 것이 가사이다. 사실 그동안 면제된 것이 많았던 것이다.
또 퇴직하고 나니 119 요원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가봐야 하는 곳도 많았다. 이것도 전에 하지 못했던 일을 이제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퇴직하면 하리라고 미뤄두었던 일도 여러 가지였다. 하고 싶은 어학 공부도 있었고 취미생활도 있었고 봉사도 있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온종일 분주하게 사느라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 날은 잠자리에 들기 전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할 때가 있었다. 나의 직업병이었다. 고상해서가 아니라 뭔가 책을 가지고 하던 일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생각하고 가르치던 일이 가져다준 습관이 만들어준 직업병이었다.
이 직업병을 해결해준 것이 브런치였다. 아무것도 읽을 여유가 없는 날에도 작은 틈만 나면 읽을거리가 있었다. 틈 사이에 읽을거리가 있었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나의 독자이자 작가들의 글을 어디서든 읽을 수 있었다. 브런치의 서비스로 카톡으로도 읽을 수 있었다.
좋은 글이 수도 없이 올라오겠지만 나는 나의 독자들의 글만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 나의 독자들의 글을 우선적으로 읽었다. 무언의 약속이었다. “브런치 나우”까지 가서 다 읽으면 좋겠지만 좋은 것이라고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의 독자이자 작가님들의 글만으로도 하루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필요량이 충분했다.
그 대신 나는 나의 독자들이 올려 준 글을 최대한 꼼꼼히 읽으려고 한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것 뻔히 알면서도, 다시 찾아 읽지 않더라도 공감이 되는 부분은 밑줄이라도 긋고 싶은 마음으로 노트에 옮겨 쓰거나 스마트폰에 메모라도 한다. 내가 성실해서가 아니다. 이것도 아직은 몸에 밴 일종의 직업병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한 과제나 일기나 서술형 시험을 접할 때 대충 읽었다가는 문제가 될 때가 있다. 잘못되면 원망을 듣기도 한다.
아마 모든 교사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검사를 대충 하면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아이들은 교사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검사를 대충 하면 자기들도 대충 하고, 철저히 하면 자기들도 꼼꼼히 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능한 교사는 아니었지만 검사를 철저히 하려고 노력한 교사였다. 그것이 결국은 내가 편해지는 길이었다. 그렇다고 작가님들을 나의 아이들 취급하거나, 평가나 검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 발표되기까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쓰는 글이라는 것을 알기에 대충 읽고 넘어가기가 죄스런 마음이다. 또 행여 글을 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의미를 오해하거나 좋은 정보를 놓쳐 버릴까 봐 일단 자세히 읽는다. 대충 읽으면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불안이 있다. 이것도 직업병일 것이다.
뭐라도 읽고 나면 체크를 하고 평가를 하고 소감을 써주던 일도 아직 직업병으로 남아있다. 주제 넘은 것이 아닐까 주저하면서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댓글을 쓸 때가 많다. 그렇다고 댓글을 의무감으로 억지로 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일을 하다가 틈을 내서 읽고 쓰는 댓글이라 마음껏 충분히 쓰지 못할 때가 많다. 아무튼 댓글까지 써야 일을 끝낸 마음이다.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책에 푹 빠지지 못하는 날, 장시간 몰입해서 글을 쓸 시간이 없어도 실시간 올라오는 글을 읽고 댓글이라도 쓰고 나면 하루의 숙제를 다 한 편안함이 온다.
또 하나의 직업병은 공지사항을 알리듯 좋은 정보나 글을 읽으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알려주려고 한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의 요지를 가족들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차라리 혼자 읽느니 거실에 모인 가족들에게 낭독을 할 때도 있다. 우리 가족들과 나는 나의 독자들의 신상명세는 사실 거의 모른다. 하지만 나의 독자들이 올린 글의 내용은 거의 공유를 하고 있다.
나는 글을 쓰려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쓰는 일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하루 일과 중에 글쓰기는 우선순위에서 가장 후순위이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가장 긴 시간 몰입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 빠지면 바로 티가 나고 감각이 둔해지는 어학이나 악기 연주와 달리 글쓰기는 눈에 띄게 티가 나지 않는다. 틈틈이 실시간으로 읽을거리를 제공해주고 댓글을 쓰고 소통을 하게 하는 브런치 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이 책을 좋아하지만 종이 책을 읽을 충분한 시간이 되지 않을 때에라도 브런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구나 다 글대로 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다른 잡념이 틈타지도 못하고 진실하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정적 속에 몰입의 평안을 느낀다. 그 진실한 순간을 서로 믿어주고 공감해주는 브런치 작가들 덕분에 힘을 얻어 또다시 글을 쓰게 된다.
가끔 한밤중에 잠이 깬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스마트폰을 열면 그때까지 밤을 새우며 글을 쓴 브런치 작가들의 글이 올라와 있다. 아마 그들 역시 몰입의 평안과 희열이 글을 쓰게 하나보다. 밤을 새워 글을 쓰는 열정까지 읽느라 더 감동을 한다.
병이란 좋은 것이 아니고, 걸리면 고치려고 하지만 나는 이 직업병을 싫어하지 않는다.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오래오래 나는 이 직업병을 가지고 있고 싶다. 퇴직하면 사그라지기 쉬운 이 직업병을 없어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 브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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