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나간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감사 ~~
병문안을 다녀왔다. 이름 있는 ‘대학병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환자의 간단치 않은 병과 증세가 느껴졌다. 층수를 헤아릴 수 없는 높은 건물의 병동 엘리베이터만 타도 중증환자들의 심각함이 호흡을 타고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환자는 동료 교사였다. 같은 학년을 하면서 하루의 시간 중 가족보다 함께한 시간이 더 많았다. 나와 함께 근무할 때도 갑상선 이상으로 늘 피곤을 호소하곤 했다. 그녀가 혈액암 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순간적이지만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만나보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다.
본인도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누구의 문안도 거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이 더 가슴이 아팠다. 몸보다 마음이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절하게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밝게 웃던 평소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함께 나누던 이야기들이 귓전을 맴돌았다. 동 학년 선생님들을 통해서 가끔씩 병이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도 있었다. 만날 수 없어서 가끔 조심스레 문자를 보내곤 했다. 한동안 답장도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좋아지고 있다며 퇴원하면 꼭 만나서 밥이라도 함께 먹자고 하트까지 곁들여 답장이 왔다. 참 다행이었다. 삶을 끝내기엔 아직은 너무 젊고 할 일도 많아서 하나님이 살려주시는가 보다 생각했다.
많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몇 사람이 함께 가보자는 연락도 받았다. 만사를 제쳐두고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갔다. 병실에 들어서서 우리는 그를 금방 찾지 못했다. 분명 병실을 맞게 찾아오고 이름을 확인하고 들어왔는데 몇 걸음을 어리바리 헤맸다.
“ 여기야 ” 희미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바로 앞에 그녀가 누워있었다. 놀라움의 외마디를 간신히 억눌렀다. 예전의 칼라풀 한 그녀는 온데간데없었다. 모자를 쓴 머리, 핏기 없는 얼굴, 퀭한 눈으로 미소 짓는 그녀를 보고 우리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말았다.
눈물을 머금고 그저 손을 잡아봤다가 팔을 만져봤다가 얼굴을 비벼봤다가 말 대신 만져볼 뿐이었다. 그 무엇으로도 그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것만 또렷했다. 밝은 웃음조차 조심스러웠다.
문병을 왔는데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보다는 무력감에 미안했다. 밖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실상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잊고 있었다기보다 착각하고 있었던 실상이다. 그래도 자신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고, 뭔가 남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로 믿고 있었다.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남의 고통을 보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남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너무 뚜렷해지는 곳이 병원이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마주 대하면서도 마음을 말로라도 표현도 해 줄 수 없었다. 애가 탈뿐이었다. 격려의 말도 왠지 형식적인 인사치레에 불과하듯 금방 허공으로 흩어졌다. 산모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는 산파였다. 잠깐의 대면으로 한순간이지만 고통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회복되어 일반병실로라도 올 수 있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 그래도 이만한 것 감사해, 모두들 기도해준 덕분이야.”라는 그녀의 가녀린 말소리가 북소리처럼 가슴을 울렸다. 마음이 많이 적응되고 회복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누워서도 감사하다니…….
병문안을 마치고 병실을 나와서야 한숨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속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침대가 밀고 들어왔다. 환자는 몸에 알 수 없는 고무호스들을 여러 개 연결하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하마터면 저절로 나오려는 한 숨을 꿀꺽 삼켰다. 환자를 둘러선 사람들의 안타까운 눈길이 부담스러운지 환자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그 순간, 환자가 아니라 병문안을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대 신세를 지지 않고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스스로 움직여 어디든 오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매일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환자뿐만 아니었다. 환자를 부축해서 실내를 오고 가는 가족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밝은 형광등 아래에서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일상생활과 생업을 접어두고 병원에 와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 또한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것마저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일반병실로만 옮겨져도 감사해하는 환자와 가족을 대하니 정말 ‘감사’라는 말을 다시 해석하게 했다. 시시때때로 올라오는 불평, 불만, 원망도 힘이 있어야 하고 자기 욕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불평, 불만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 현관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경비원이 통행을 제지하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아주 낮게 뜬 헬리콥터가 ‘뚜두 두두 뚜두 두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착을 시도하고 있었다. 푸른 잔디 사이의 넓은 공간이 바로 이런 공터로 준비된 것이었다. 헬리콥터는 소리만 요란한 것이 아니었다. 반경 4,5미터까지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들썩거리는 치마를 휘감아 잡아야 할 정도로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경비원이 접근을 막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날개에 119라고 쓴 헬리콥터가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남의 불행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즐기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얼마나 위급했으면 헬리콥터로 이송을 하고 있을까. 헬리콥터가 정착을 하고 문이 열렸다. 주황색 옷을 입은 119 요원 두 사람만 들것을 내리고 있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일반인은 아무도 없었다. 대기하고 있던 병원 침대로 환자가 옮겨졌다.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얼마나 생명이 위급했으면 119 응급차도 아니고 119 헬리콥터로 이송을 했을까, 함께 동승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연락을 받은 가족들은 또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며 달려오고 있을까.
의식이 깨어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고 숨 가쁘게 달려왔을 119 요원들은 오는 내내 얼마나 가슴 졸였을 것인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가족들의 심정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잠시 전, 단 1분 전과 너무나 달라진 현실 앞에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힘이 풀려 후들거리는 다리로도 달려오느라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한 순간에 닥친 낭패감에 두렵고 떨었을 가족들의 모습이 시공을 넘어 나에게까지 소름이 돋게 하고 있었다.
119 요원이 다시 와서 헬리콥터를 타자 헬리콥터는 다시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고 어디론가 날아갔다. 멀리서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다 각자의 길로 발길을 돌렸다. 잔디는 여전히 연둣빛으로 펼쳐져 있고 나무들도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도 바로 주차장으로 와서 차를 탔다. 주차요금을 정산하고 병원을 빠져나와 여러 차들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닥친 그 낯선 상황도 결국 오롯이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두고 우리는 또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나는 또다시 더 작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매일 하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감사인가. 내 힘으로 숨을 쉴 수 있는 것조차도…….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오늘도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큰 사회봉사는 못해도 가족에게라도 짐이 되지 않고 작은 힘이라도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을 때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아파트 주차장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 집에 무사히 왔다는 것에도 감사했다. 매일 지나치면서도 무심코 봐 왔던 수목들, 정원에 핀 꽃들이 눈에 하나하나 들어왔다. 이 가을을 느끼게 하는 선선한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걸을 수 있다는 것도 감사했다.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하지 않고 있어서 헬리콥터까지 동원해서 보여준 감사였다.
매일매일, 아침에 나간 가족들이 아무 일 없이 모두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매일매일 얼마나 큰 감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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