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아해하며 인터폰을 확인하니 아랫집에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순간,‘층간소음 때문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유인즉 아랫집 주방 쪽 천장이 젖고 얼룩이 생긴단다.
아파트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층간소음과 누수라고 들어왔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말만 들어도 심란하기 이를 때 없었다. 아래층을 내려가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다. 누가 봐도 위층인 우리 집이 원인으로 추정되었다.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미안했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죄를 했다. 아랫집 부부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미안해하지 말라고 웃음으로 화답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 말고 날이 밝는 대로 원인을 찾아보자고 했다.
당장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얼룩이 진 것으로 봐서 겨울이라 온수를 쓰니 온수관이 새는가 의심이 되었다. 우리는 일단 온수사용을 멈추어보았다. 불안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누수’가 흐르듯 머릿속을 맴도는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하룻밤 지나고 확인해 보니 여전했다. 관리소장님 말씀은 20년이 채 안된 아파트라서 아직 누수는 거의 없다는데 하필이면 우리 집이 첫 테이프를 끊는가 심란했다.
한시가 급했다.
이웃 간 얼굴 붉히기 전에 해결해야 했다. 누수탐지 전문가를 불렀다. 대기자가 밀려서 오후에서야 탐지기사님이 오셨다. 꽤나 무거워 보이는 탐지기를 대동하고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우리 집과 아랫집 현장 확인한 후 쉰은 넘어 보이는 기사님은 양쪽 부부를 다 우리 집으로 집합시켰다. 다년간 경험에 의해 양쪽 입회하에 눈으로 직접 확인을 시켜가며 해야 뒤탈이 없다고 했다.
기사님도 우리 짐작처럼 온수관을 의심하며 탐지기를 작동시켰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내 속은 조마조마했다. 제발 우리 집이 원인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탐지기는 온수관 누수가 아니었다.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냉수가 문제일리는 없다 하면서도 아래층 분들이 미심쩍어하니 냉수도 탐지를 했다. 그 미세한 누수탐지기 바늘의 떨림에 우리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었다. 침묵 속 긴장모드였다.
비용이전에 덜 미안하고 싶었다.
기사님은 냉수도 누수가 아니라고 했다. 차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몇 분이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불안에서 해방되는 한숨을 쉬었다. 상황이 바뀌어 이제 아래층 부부가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원인이 우리 집이 아니라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원인을 다시 찾아보자고 했다.
아랫집 부부는 민망해하면서도 선뜻 인정을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고개를 갸웃뚱거리며 연신 우리 집 싱크대 아래를 열어보곤 했다. 그들이 수긍하지 않으니 아직 끝이 아니었다. 아랫집 천장이니 우리 집에 대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음을 나도 아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드니 다시 찝찝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다. 미봉책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싱크대 가장 하단 판을 당겨서 열어 보자고 했다. 미심쩍은 해결로 더 불안해질까 두려웠다. 기사님도 동의해서 싱크대 가장 하단판을 당겨 해체해 주었다. 시멘트바닥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시멘트 바닥이 젖어 있는 것이 아닌가! 축축했다. 정수기에서 이어진 관 이음새 부분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몇 달 전 약정기간이 만료되어 정수기를 교체했다. 이음새 부분 나사가 덜 조인 상태였다. 우리 부부는 다시 뻘쭘해졌다. 어찌 되었든 원인이 우리 집이니 다시 사과를 했다. 아랫집 부부는 미안해하는 우리를 토닥거려 주며 우리 잘못이 아니니 미안해할 것 없다며 빨리 정수기회사에 연락하라고 했다.
쫓기듯 정수기회사에 연락을 했다.
사고접수를 하고 30분 내로 설치기사가 도착했다. 기사는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심려를 끼쳐 정말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다. 수돗물을 잠그고 꽉 조이지 않은 정수기연결 부분과 누수 현상을 확인했다. 사진과 동영상도 찍었다. 정수기 기사는 아랫집에 내려가서도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사죄를 했다. 젖은 천장도 바로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정수기회사에는 다음 날 바로 현장확인 후 배상을 진행했다. 누수탐지 비용과 아랫집 천장도배 비용을 담당해 주었다. 비용분담보다 신속한 사죄와 사후처리에 우리는 불만을 토로할 틈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아랫집 덕분에 우리집 정수기와 젖은 바닥을 해결한 셈이다.
우리는 서로 “미안하다 고맙다” 하며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원만한 해결의 비결은 '서로서로 바로바로 한 사죄'가 최우선이었다. 불만이 고일 틈 없었다. 천장이 젖은 상태에도 대뜸 고성을 지르지 않고 조심스레 부드럽게 말해준 아래층 부부가 첫 단추를 잘 끼워 주었고, 실수를 확인하는 순간 지체 없이 달려와 사과하고 사후처리에 만전을 기해준 회사와 기사님이 끝마무리를 잘 해준 덕분이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역시 순간순간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주는 자세였다. 진심 어린 사과에 불만도 날아가 버리고 배려하며 주고받는 말은 냉랭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여 주는 온기였다. 서로 왕래도 없이 지냈지만 누수문제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우리는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